[풍수로 보는 재테크] 도참정치의 허와 실

입력 2015-04-06 07:01  

‘미나리는 사철이고 장다리는 한철이다’라는 가락은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빗댄 참요(讖謠)다. 참(讖)은 비결이고 요(謠)는 노래다. 같은 처지로 비결 담긴 서책은 참서(讖書)가 되고, 예언 담긴 그림은 도참(圖讖)이 된다. 여기에 정치적 예언이 더해진 도참사상의 으뜸은 조선시대 금서 ‘정감록(鄭鑑錄)’이 제일이다. 이씨(李氏) 아닌 정씨(鄭氏)가 개국한다는 계룡산 유토피아는 과연 존재할까.

조선시대 정조 9년(1785) 지리산 하동(河東)에서 새 왕조를 꿈꾸는 역모 사건이 발생한다. 일명 ‘홍복용 옥사 사건’이다. 홍복용은 실각한 홍대용의 사촌 동생으로 새 정치판을 원했다. 지인이던 지사(地師) 양형은 하동 길지(吉地)를 택해 은자 6300냥을 받아 백여 칸이 넘는 집을 짓는다. 역성을 위한 양택명당 이전이다. 하동 일대는 50여년 전 ‘신왕조의 도읍 예정지’라는 참언이 돌아 영조도 머리 아파하던 지역으로 이미 역모의 싹이 클 수 있는 생명의 공간이 구축돼 있었던 셈이다.

홍복용에게는 능지처사를 당한 문양해라는 천민이 있었다. 전국 최대 규모의 조직과 4만명 거병 체제는 정감록을 손에 ?그의 작품이다. 역성 혁명은 하늘, 사람, 땅의 조화로움 끝에 성공이 가능하다. 정조 이후 열세 번에 이르는 조선의 변란 속에는 이 세 가지를 한 줄에 꿰어 대의명분을 입힌 정감록이 있었다.

그 줄기에는 하늘은 ‘조선 건국 482년 서기 1830년에 조선이 망한다(方百馬角 口或禾生)’는 참언의 명분이 있었다. 사람은 ‘정씨 진인의 출현을 통한 이상향에 대한 희망(利在弓弓)’ 즉 메시아니즘을 노래했다. 땅은 ‘혁명 성공을 통한 이상국가 건설의 계룡산 입지’를 풍수로 점지해 공간의 범위를 확정했다. 그렇게 계룡산 일대는 새 국도의 위용을 갖췄다.

허나 홍복용의 역성 혁명은 주모자 박서집의 고변으로 막이 내린다. 하늘의 뜻과 산천의 기운으로 무능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겠다던 바람은 결국 사람에 의해 주저앉았다. 시기가 무르익고 입지가 좋아도 사람이 그르면 일은 틀어진다.

생명 보존을 위한 목숨 부지의 십승지는 도참이 아닌 주거 풍수 입지다. 신비한 것도 비술적인 것도 없는, 병화 없이 먹고 살 생명보존의 자리일 뿐이다. 도참이 정치적 상황과 시대를 이용한 한철 장다리라면, 풍수학은 주기론적 입장에서 이어온 사철 미나리다. 정씨 계룡산 800년 이후에 조씨 가야산 1000년, 범씨 완산 600년, 왕씨 송악산으로 이어진다는 유토피아는 결국 사람 손에 달렸다. 지고 이고 떠나는 남부여대(男負女戴)의 도시 행렬이 조선 변란의 모습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강해연 < KNL디자인그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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