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완 기자 ] 지난 수년간 국내에서 H형강(건축물 등 대형 구조물 골조나 토목공사에 많이 쓰이는 단면이 H모양인 형강)을 저가로 덤핑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는 중국 업체들이 혐의 사실을 인정하고 판매 가격을 높이기로 했다. 당초 중국 정부와의 통상 마찰이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제기됐던 만큼 중국 업체들의 신속한 가격 인상 결정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란 평가다.
가격 인상 전격 제안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허베이강철, 진시강철, 르자오강철 등 중국 주요 철강업체 7곳은 지난달 31일 한국 정부에 국내 수출하는 H형강 가격을 자국 시장 수준만큼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가 해당 중국 업체들에 대해 덤핑 예비판정을 내린 데 따른 조치다. 당시 무역위는 중국 업체들의 잠정 덤핑률이 최고 32.72%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해 5월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국내에 범람하는 중국산 H형강에 대해 무역위에 반덤핑 제소장을 제출, 조사를 의뢰했다. 국내 H형강 시장 규모는 2조5000억원으로 중국산 점유율은 30%에 이른다.
덤핑관세만큼 가격 올릴 듯
중국 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제안한 것은 덤핑관세를 모면하기 위해서다. 절차상 덤핑 혐의로 조사를 받은 업체는 최종 판정이 내려지기 전에 ‘가격약속 제의’를 할 수 있다. 덤핑 사실을 인정하고 덤핑률에 상응해 가격을 올려 공정 경쟁을 하겠다는 약속이다. 해당 제안을 무역위와 기재부가 수용하면 중국 업체들은 덤핑관세를 부과받지 않는다. 이 업체들이 제안한 구체적인 액수는 비공개다. 다만 대부분 업체가 예상 덤핑관세를 적용한 가격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해당 업체의 최종 덤핑률과 제안된 가격을 비교해 5월 말까지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H형강이 중국 주력 산업이고 2조원이 넘는 큰 시장인데 예비판정 이후 현지 조사가 끝나자마자 중국 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제안해 놀랐다”고 말했다. 그동안 중국 철강업체들이 한국 정부의 예비판정에 반발해 중국 정부에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할 경우 2000년 ‘마늘 분쟁’ 등과 같은 통상 마찰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또 중국 철강업체들이 한국 정부의 판정이 불공정하다며 WTO에 제소하거나 국내 법정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점쳐졌다.
가격 높여 실익 챙기기
하지만 중국 업체들은 혐의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최대한 실익을 챙기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덤핑관세를 피할 수 없다면 수출 가격을 덤핑 혐의를 벗어날 정도로 최대한 높여 이윤을 남기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중국산 H형강의 가격 인상을 앞두고 국내 업체들은 반색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로 국내 업체도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홍정의 한국철강협회 조사통상실 과장은 “중국 업체의 덤핑으로 한국산 가격이 떨어지고 점유율도 낮아졌는데 하반기에는 정상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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