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학을 취업학원화하는 정부주도 개혁

입력 2015-04-07 20:40  

"재정지원사업에 의존하는 대학들
창의·혁신 원천 아닌 생존본능뿐
대학구조개혁, 대학 자율에 맡겨야"

박영아 < 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은 여성으로선 최초로 미국 정치학자인 엘리너 오스트롬이 받았다. 공유지가 사유화되거나 정부에 의해 통제돼야 한다는 기존 이론들을 반박하고, 자치 제도의 가능성과 조건을 제시한 업적을 인정받았다. 핵심은 다양한 제도들을 국가와 시장이라는 정해진 개념의 틀에 끼워맞추려는 행동에 대한 비판이다.

그녀의 대표 저서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를 읽으며 필자의 머릿속에는 한국의 대학이 직면한 현실이 망가진 공유지와 겹쳐 보였다.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대학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다. 현재 우리 대학들의 모습은 어떤가. 대학들은 철학과 비전, 목표가 불분명하고, 구체적인 인재상도 없으며, 연구에서도 도전성과 장기적 관점의 방향성이 없다.

정부의 대학구조 개혁은 이런 대학의 표류를 가속화하고 있다. 대학평가 기준 가운데 취업률은 15%, 재학생 충원율은 22.5%로 다른 기준들보다 높고, 대학별 학과별 특성을 무시한 채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학들은 취업률이 낮고 학생 모집이 어려운 비인기학과와 인문사회계열 학과를 중심으로 통폐합을 할 수밖에 없다. 대학이 더욱 두려워하는 것은 평가결과를 5등급으로 분류해 최우수 등급이 아니면 교육부가 정원감축을 요구할 수 있고, ‘보통’ 등급 이상의 대학들만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결국 대학은 고유한 특성과 철학에 적합한 발전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해마다 바뀌는 정부 재정지원사업의 틀에 맞춰 원칙 없이 목표와 정책을 바꾸고 있다. 융합교육방침에 따라 졸업 요건을 완화하는 등 학생의 전공과 수업선택권은 증가했으나, 전공교육과 기초역량이 모자라는 함량미달 졸업생도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고등교육법에 명기한 대학 본연의 모습은 물 건너갔고, 어떻게든 정부의 입맛을 맞춰 살아남겠다는 생존본능만 남은 상태다. 어느새 창의와 혁신의 원천이어야 할 대학이란 공유지가 황폐한 ‘취업준비학원’이 돼버렸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간하는 ‘세계 경쟁력 분석 보고서’를 보면 이런 정책추진 결과는 참혹할 정도다. 고등교육 취학률은 세계 1, 2위를 다투지만, 고등교육 및 훈련 수준은 2010년 15위에서 2014년 23위로, 교육시스템의 품질은 2010년 57위에서 2014년 73위로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다.

오스트롬이 제시한 ‘공유지 당사자들이 감시체제를 마련하면, 감시자와 제재자의 이익과도 일치하게 된다’는 대안은 우리 대학 문제의 해법을 말해준다. 정부는 재정지원사업을 지원하되 대학 개혁?대학자율에 맡겨야 하고, 대학 또한 스스로 강점을 찾아 각자의 철학과 가치에 충실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학교육시스템이 제대로 설계되고 실행돼야 비정상적인 초중등교육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국가경쟁력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대학이라는 공유지’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한국의 성장과 미래는 없다. 정부와 대학 모두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대학을 어떻게 본연의 모습으로 정상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할 때다. 정부는 2014년 주요 재정지원사업인 BK21 플러스사업에 2729억원, 대학특성화사업에 2485억원, 산학협력선도대학 육성사업(LINC)에 2388억원, 학부교육선도대학 육성사업(ACE)에는 573억원을 투자했다. 적지 않은 재원을 매년 투자했음에도 황폐화돼 가는 대학이란 공유지를 원상복귀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박영아 < 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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