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과 뚝심이 강점"
[ 정인설 기자 ]
1987년 어느 날 당시 기옥 금호그룹 회장 부속실 차장은 고(故) 박성용 금호그룹 회장의 호출을 받았다. “항공사 설립 실무를 맡으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기 차장은 1988년 2월 아시아나항공의 전신인 서울항공을 세우는 일을 도맡아했다. 그해 8월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당연히 아시아나항공 ‘사번 1번’이 됐다.
이후 그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1번으로 부름을 받고 있다. 30년 이상 그룹에 몸담으며 인간미와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아 구조조정 등 핵심 사안이 있으면 어김없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6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난 7일자로 금호산업과 금호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을 지켜 그룹을 재건해야 하는 시점에 대외협력담당 사장으로 돌아왔다.
재계에 ‘특급 소방수’들이 늘고 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처럼 경륜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백전노장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유화 조선 항공 자동차 등 다양한 업종에서 ‘올드맨’들이 복귀하고 있다. 모두 현 殆【?물러났다가 60세가 넘은 나이에 경영 일선으로 돌아오는 게 공통점이다.
6일 대우조선해양 사장으로 내정된 정성립 STX조선해양 사장(65)도 그런 부류다. 그는 위기돌파형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1981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한 뒤 유럽 지사장 등을 거치며 대형 거래처를 뚫은 영업통이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지내며 경영능력을 검증받은 뒤 9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왔다.
금춘수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장(62·사장)도 그렇다. 금 사장은 2010년 말 그룹 경영기획실장에서 한화차이나 사장으로 이동하면서 한화의 중국 사업의 초석을 다졌다. 한화생명 중국법인과 한화쏠라원 설립 등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작년 4월 고문으로 물러났다. 7개월 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영 복귀에 맞춰 그룹 경영기획실장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창사 이후 첫 적자를 낸 에쓰오일은 김동철 고문(65)을 2년 만에 수석 부사장으로 불러들였다. 나세르 알마하셔 에쓰오일 사장을 도와 34년 만에 처음 적자에 빠진 회사를 구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판단에서다. 올해부터 3년간 울산 온산공단에 5조원가량을 투입해 석유화학 설비를 증설해야 하는 상황도 김 수석 부사장의 복귀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반적으로 영업통이나 대외관계 전문가들이 소방수로 많이 투입된다. 현대자동차그룹엔 노사관계와 연구개발(R&D) 전문가들이 돌아오는 경우가 잦다. 윤여철 현대차 노무담당 부회장(63)은 2013년 5월 노무 업무를 다시 맡았다. 2012년 1월 울산공장 노조원 분신 사망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지 16개월 만이었다. 윤 부회장은 2004년부터 노무관리지원담당 부사장과 울산공장장(사장), 노무총괄 부회장을 거치면서 ‘3년 연속 무파업’을 이끌어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힘들 때 일선에서 물러난 경륜 있는 CEO를 다시 불러들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이들은 대부분 넓은 인맥과 뚝심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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