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Movie] 대한민국 역사는 "자랑스런 역사"…실증자료로 '좌파 역사인식' 질타

입력 2015-04-10 18:28  

길잃은 내가 만난 운명의 Book (19) 이영훈의 '대한민국 이야기'


학생일 때 필자는 아무런 근거 없이 젊은이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는 반(半)봉건 식민지이고 빈부격차가 세상에서 가장 심한, 형편없는 나라로 알고 있었다. 이것은 신념이 되었고, 필자는 박정희 정부를 무척 미워했다. 그러다가 1978년 미국 대학의 장학금을 받아 유학을 가게 되었다. 대학원 경제사 세미나를 통해 필자는 이전에 믿었던 것들이 온통 헛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세계 모든 사람들로부터 기적으로 평가되고 있었고, 부의 불평등도 상대적으로 그리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은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

필자는 2006년 이영훈 교수를 포함해 몇 명 동료 교수들과 함께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라는 책을 편찬했다. 발간 이유는 우리 역사를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그러한 역사 인식은 ‘해방 전후사의 인?이하 인식)’이라는 출판물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1979년 첫 권이 출간되어 총 6권으로 마무리된 ‘인식’은 민중과 민족을 주축으로 한 역사해석을 제시해 수백만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력 내지는 해악을 끼쳤다. ‘인식’은 우리 현대사를 민족 지상주의와 민중혁명 필연론으로 해석하는 극단적 입장을 취했다. 대한민국의 성립과 발전 과정을 극도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 책은 사료와 자료를 근거로 한 학문적 성과라기보다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선언문에 불과했다. 우리는 이 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로 했다. 1980년대 이후 학계에 발표된 연구물을 토대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썼다. 이영훈 교수는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대중서를 집필했는데 그 책이 바로 ‘대한민국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이영훈은 조선왕조가 패망한 원인, 식민지수탈론, 친일 협력자, 위안부, 반민특위 등 민족정서에 저촉될지 모르는 민감한 문제들을 용감하게, 담담하게 다루었다. 그리고 당시 정부 여당과 좌파 인사들로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나라’라는 비난을 들었던 대한민국의 성립과 발전 과정을 열정적으로 변호하고 있다.


아직도 친일파 문제는 우리사회를 분열로 치닫게 하는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민족지상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친일은 가장 비난받을 행위로 간주된다. 대한민국의 성립을 비난하는 사宕湧?이승만 정부가 친일파를 척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이 되었다는 식의 주장을 되풀이해왔다. 그러나 식민지배를 받는 모든 사회에서 지배세력에 대한 협력과 저항은 실상 이분법적으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행위가 아니다.

영훈은 ‘대한민국 이야기’에서 우리나라 공교육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반일교육 행위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2001년 발행된 고교 국사교과서는 총독부가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전국 농지의 4할이나 되는 많은 토지를 국유지로 수탈하였고 일본 농민이나 동양척식회사와 같은 국책회사에 헐값으로 불하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교과서는 또한 일제가 우리 땅에서 생산된 쌀의 절반을 빼앗아 일본으로 실어 날랐으며 정신대라는 명목으로 수십만의 처녀들을 위안부로 삼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도 일제가 총칼을 앞세워 토지를 수탈하는 장면이 나오며, 그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 역시 그러한 주장을 무조건 수용해왔다. 그러나 토지조사사업을 자세히 연구한 이영훈은 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그러한 주장은 대부분 근거가 없거나 과장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는 그러한 왜곡된 서술은 대중의 집단기억의 권력화인 동시에 후진사회의 특징이라고 비판한다.

해방 후 대한민국의 성립에 대한 좌우 학계의 대립 역시 아직도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이 문제는 특히 이승만에 대한 평가와 연결되는데, 일반적으로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 민족의 분단을 초래했고 친일파를 청산하기 위한 반민특위의 활동을 저지했으며, 농지개혁을 지주층에 유리하게 실시해 실패하게 만들었고, 정치세력을 탄압해 민주정치의 싹을 잘랐다는 등의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대한민국 이야기’는 모든 비난의 대부분이 중상모략이라고 결론짓는다. 오히려 마치 전쟁과도 같았던 나라 세우기의 정치판에서 대한민국이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이념 및 개인의 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를 기본으로 출발할 수 있게 된 것이야말로 투철한 자유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였던 이승만의 가장 큰 공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이야기’는 분단의 책임을 이승만에게 돌리는 것도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북한은 이미 1946년부터 사실상 정부에 준하는 통치행위를 전개한 데 반해 한반도 남쪽의 미군정은 협력자를 선택하는 데 무척이나 주저했다.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중단시킨 것에 대해서 이영훈은 “이승만이 보기에 민족의 거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친일파를 단죄하는 것은 또 하나의 부질없는 분열과 혼란을 의미할 뿐”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6·25전쟁의 발발 책임에 대한 수정주의 해석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1980년대 브루스 커밍스가 주장한 수정주의 해석은 내전설과 유인설로 구성되는데, 내전설은 식민지 시기부터 시작된 이념적 갈등이 크고 작은 갈등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대규모 전쟁으로 터졌다는 주장이며, 유인설은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침하도록 덫을 놓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정주의 해석은 소련이 몰락하면서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비밀 해제된 구소련 문서에 의하여 6·25전쟁은 김일성과 스탈린, 모택동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기획되고 추진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이야기’는 이 부분을 무겁게 다루고 있다.

‘대한민국 이야기’는 1950년대를 어둡고 우울한 절망의 시대로 묘사하는 것도 맞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시대는 의회정치와 정당정치의 시도, 자본주의 경제의 도입, 국민교육의 확대, 농지개혁이 가져다준 평등화의 실현 등 비록 만족스럽지는 못하나 첫 삽으로 뜨기에는 충분한 역사적 성과가 이루어진 시대였던 것이다. 특히 이승만 정부의 업적은 그동안 과도하게 폄하되어 왔는데 요즘 연구들은 농지개혁, 한미수호방위조약, 그리고 수입대체 공업화를 이승만의 중요한 업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한 바탕이 없었다면 1960년대 이후 우리의 성공적인 경제발전과 근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잘못 세워진 나라’라는 터무니없는 비방은 사라져야 하며 ‘대한민국 이야기’는 그 사실을 실증적으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박지향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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