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주권론이 핵 확산 키우는 '주범'
‘이란발 핵 위기’가 고비를 넘었다. 이란이 미국 등과 협상을 통해 핵무기 개발을 사실상 중단하기로 했다. 이란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경제를 택했다는 분석이다. 이란의 경제는 핵무기 개발 이후 서방의 제재로 엉망인 상태다. 이란은 중동의 대표적 산유국이지만 서방 국가의 제재로 수출길이 막혀 경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6개월간 이란의 핵투명성을 더 지켜본 뒤 제재 완화 등을 완전히 합의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며 협상 결과를 맹비난했다. 이란의 사례가 다른 나라의 핵 보유를 부추길지 모른다. 이란처럼 핵주권론을 앞세울 나라는 얼마든지 있다.
핵무기 초강국은 러시아·미국
세계적으로 핵 초강대국은 러시아와 미국이다. 러시아 핵탄두는 1만1000여개에 달하고 미국은 8500개 정도다. 군사대국을 꿈꾸며 꾸준히 군비 지출을 늘리고 있는 중국의 핵탄두는 240개 정도로 추정된다.
글로벌 영향력에 비해 핵탄두 수는 러시아와 미국에 刮?못 미친다. 프랑스와 영국은 핵탄두 수가 중국과 엇비슷하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국경을 맞대고 말 그대로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는 인도와 파키스탄은 각각 100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은 핵무기 보유 여부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80개 정도의 핵탄두가 있을 것이란 게 정설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을 2000t 정도 갖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수백개의 핵탄두를 손쉽게 만들 수 있다.
핵을 보유하려는 욕구는 한마디로 효율성과 파괴력 때문이다. 엄청난 돈을 들여 지속적으로 재래식 무기를 업그레이드하는 대신 핵무기를 보유하면 초기 개발비용은 더 들더라도 궁극적으로 국방비를 줄이고 군사대국으로 인정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적대국가의 공격에 미리 ‘단단한 방어막’을 치는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하나는 핵무기를 상품화하려는 유혹이다. 핵무기를 기술력이 부족한 국가나 특정 단체에 팔아넘겨 돈을 챙기려는 상술적 속셈도 핵무기 개발을 부추긴다.
깨지면 재앙인 ‘공포의 균형’
군사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 핵보유국에 적대감이 강한 나라, 국제적 테러단체 등은 핵무기를 보유해 기존의 핵국가에 맞서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 핵무기는 공격무기이면서도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방어효과를 내는 무기라는 인식 또한 강하다.
“네가 쏘면 나도 쏜다”는 이른바 ‘공포의 균형’으로 전쟁을 억제하고 나라의 주권을 지키겠다는 것은 핵을 만들려는 나라들이 내거는 거의 공통된 명분이다. 하지만 핵무기가 중심이 되는 공포의 균형은 일반적인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과는 성격이 다르다.
힘의 균형은 말 그대로 경제력이나 (재래식) 군사력 측면에서 비슷한 힘을 갖추는 것을 의미하지만 공포의 균형은 핵탄두 보유 수가 균형을 이루지 않아도 성립된다. 핵탄두 200개를 가진 나라가 100개를 가진 나라보다 두 배 위협적이라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북한이 수십개의 핵탄두만으로 8000여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미국과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핵의 위력이 두렵기 때문이다. 테러단체들이 핵무기를 보유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도 바로 이런 불균형의 유혹이 강하기 때문이다.
빠지기 쉬운 ‘구성의 오류’
경제학에 ‘구성의 오류(The fallacy of composition)’라는 게 있다. 부분적으로 성립하는 원리를 전체적으로 확대할 때 발생하는 오류를 말한다. 핵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된다. 어떤 나라가 핵주권을 주장하는 것은 나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모든 국가들이 핵주권을 외치며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세상은 어찌 될까. 아마 더 평화로워지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주권론의 함정은 책임론이다. 평화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책임의식 없이 핵무기만 고집하는 나라들이 늘어난다면 세상은 더 혼란스러워질 게 분명하다. 북한의 핵으로 한반도 정세가 그만큼 불안해진 것이 이를 반증한다.
핵은 어떤 경우에도 평화를 위협하는 무기로 쓰여서는 안 된다. 핵무기의 비확산, 핵의 평화적 이용은 평화롭고 영속적인 지구촌을 위 ?모두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인류 공통의 숙제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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