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 가입 '실기의 비용'

입력 2015-04-10 21:06  

현장에서

2년 전엔 참여 제의 거부
지금은 가입 못해 안달
미국에 '쌀 개방압박' 빌미 줘



[ 심성미 기자 ] 최근 미국 출장 중 만난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와 관련된 비사(秘事)를 소개했다.

“2013년 초 미국은 한국에 TPP 참여를 요청했다. 하지만 한국은 ‘바쁘다’며 거절했다. 당시 한국은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매달려 있었다.

한·중 FTA가 타결되자 한국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당장 TPP에 참여하고 싶다’며 채근했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의 통상 당국자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세계 경제 대국과 FTA를 맺은 한국 정부의 지금 최대 통상 현안은 ‘TPP 조기 참여’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안에 TPP 참여를 선언하고 가시적 성과를 홍보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 내에서도 이런 전략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적지 않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TPP 회원국을 넓혀 아·태 지역의 영향력을 키우고자 하는 미국은 굳이 한국이 서둘지 않아도 한국을 초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가입하지 않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일부 국가 등 다른 나라가 가입 선언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참여하는 게 한국의 몸값을 높이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TPP 참여에 몸이 달아 있는 한국에 미국은 ‘쌀시장 추가 개방’이란 공격 카드를 제시하려 하고 있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쌀 시장 추가 개방 여부는 (TPP 협상을 벌이고 있는) 일본에도 큰 이슈”라며 “일본이 할 수 있다면 한국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TPP 협상 타결을 위해 12개국 정부 모두 자국 내 정치적 손실을 감수하고 있는데, 한국에만 쌀 시장 양보 불가라는 특혜를 줄 수 없다는 논리다.

가뜩이나 TPP 참여를 서두르고 있는 한국의 처지를 이용해 미국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속셈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2013년 한·중 FTA라는 확실한 성과만 좇다가 TPP 참여를 실기(失機)했다. 이번에도 ‘가시적 성과’에 집착해 미국에 매달리면서 한국 스스로 몸값을 낮추고 있다. 긴 안목의 통상전략 부재로 또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를지 걱정된다.

세종=심성미 경제부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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