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통한 정체성은 우리를 따를 민족이 없다. ‘강기욱(姜基旭)’이라는 성명을 들여다 보자. 진주 강(姜)은 성(姓)이다. 아버지의 혈연적 출계(出系)를 뜻하는 ‘강’과 공간적 기원지인 진주를 ‘본관(本貫)’으로 담았다. ‘기욱(基旭)’은 명(名)이다. 기(基)는 동성동본의 세대 간 대수를 나타내는 항렬(行列)이고, 욱(旭)은 개인의 자(字)다.
보학(譜學)에 뜻이 있어 기(基)를 추적하면 ‘진주 강씨 어사공파 24대손’임이 쉬이 드러난다. 여기에 23대 돌림자 찬(燦)이 음양오행의 화(火)기운, 25대 진(鎭)이 금(金)기운임이 확인되면 금상첨화다. 23대의 화기운이 24대 토기운을, 24대 토기운이 25대 금기운을 상생시켜 가문 번창의 의지를 절절히 담아냈다. 여기에 ‘기욱(基旭)’이란 이름은 ‘득의(得意)에 뜻을 품은 사람’이라는 대의까지 낳았다.
‘이름값’이란 말이 있다. 이름에 알 쩜?행동이나 평판 때문에 치르는 대가를 말한다. 성명의 세 글자 속 이름값은 ‘강의식 장군을 시조로 진주에 세거지를 둔 어사공파 24대손인 득의에 뜻을 품은 사람’으로서의 가치 평가다.
언어를 빌려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뜻을 전하는 진중한 우리 민족이 성씨집단의 거주지와 공간적 이주·확산과정 속 산천 이름 명명에 신중을 기했음은 불문가지다.
풍수학에서 지명(地名)은 문화지리·사회정치의 숨결이자 미래 예측 도구다. 조선시대 만초천이 흐르던 서소문 밖 약현(藥峴)에는 한동(翰洞)이라 불리던 마을이 있었다. 한(翰)은 편지글, 붓, 문서를 뜻한다. 250여년이 지난 오늘날 언론사 본사 사옥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마을의 족적이 되고 있다.
부동산 개발 디벨로퍼들은 한결같이 ‘땅을 모르겠다’고 푸념한다. 해답은 김춘수 시인의 ‘꽃’에 있다. 이름을 모르면 그저 쳐다보는 남일 뿐이다. 선조들이 ‘~곡(谷)’이라 붙인 지명은 마을이 들어갈 실(室)을 구비한 경우가 많다. 사신사에 둘러싸인 공간 규모가 10만~25만㎡의 아늑하고 물이 흘러 수원도 풍부하다. 입구에서 300m 내외의 친밀한 공간이니 전원주택지로 제격이다. ‘~산계(山系)’의 야산·달·막·각종 동물, ‘~수계(水系)’의 여울·내·몰 등이 모두 제 이름으로 꽃이 되길 원한다. 지명은 아이덴티티와 이데올로기의 총아다. 만나서 되뇌이는 이름 속에 땅을 읽는 씨앗이 숨겨져 있다.
강해연 < KNL디자인그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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