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한림원·이공계 대학 교수·기업임원 설문
인사담당 임원 77% "고교 과학교육 부족"
"문·이과 통합 계기 대입제도 등 보완 필요"
[ 김태훈 기자 ]
요즘 상당수 대기업은 신입사원을 뽑을 때 이공계 대학 졸업생의 전공 이수 과목과 학점까지 따져 본다. 수학 물리 화학 등 과학 기초가 얼마나 탄탄한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기초가 탄탄하지 않고선 융합형 인재로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의 고민은 한국경제신문이 조사한 ‘과학 교육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50개 대기업 인사 담당 임원의 76.9%는 ‘고등학교에서 과학 소양을 많이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고, 과학 선택 과목 수를 줄인 대학수학능력시험 제도 변화에 대해서도 78.8%가 ‘퇴보했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에는 한국공학한림원 기업 회원(최고경영자 39명, 임원 13명), 50개 대기업 인사 담당 임원, 주요 10개 대학 이공계 교수 261명 등이 참여했다.
이공계 교수 92% “대입제도 퇴보”
2005년 선택형 수능이 도입되면서부터 문과 및 예체능 계열을 지원하는 60%의 학생은 과학 분야에서 한 과목도 보지 않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이과생이 수능에서 선택해야 하는 과학 과목 수도 줄었다. 4과목까지 선택하던 게 2012년에는 3과목, 2014년에는 2과목으로 줄었다. 수험생의 학습 부담을 덜고 사교육 부담을 줄이기 위한 수능 개편의 결과다.
주요 10개 대학 이공계 대학교수 92%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해 ‘퇴보했다’고 평가했다. ‘매우 퇴보’라고 답한 사람이 64.8%에 달했고 ‘조금 퇴보’라는 응답도 27.2%였다. 반면 ‘어느 정도 발전(4.2%)’ ‘매우 발전(0.4%)’ 응답은 4.6%에 그쳤다. 공학한림원의 기업회원 응답자 중 84.6%, 50개 대기업 인사 담당 임원 78.8%도 ‘퇴보했다’고 답했다.
고등학교에서 과학 소양을 얼마나 가르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부정적 평가가 앞섰다. 50개 대기업 임원의 76.9%, 이공계 대학교수의 75.9%가 ‘많이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교육과정·대입제도 함께 바꿔야
정부는 창의융합형 인재를 키우기 위해 2018년부터 고등학교에서 문·이과 구분을 없애기로 했다. 대입에서 과학 시험을 보지 않고 진학하던 문과·예체능 계열 학생이 신설되는 통합과학을 배우고 시험도 보는 등 융합교육에 긍정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통합 취지에 대해 산업계는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공학한림원 응답자 44.3%가 ‘대체로 바람직하다’, 19.2%가 ‘매우 바람직하다’고 말해 찬성 의견이 63.5%로 많았다.
하지만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통합 교육과정을 마련하면서 수학, 과학 교육 내용을 현재 문과 수준으로 낮추면 이공계 대학 진학자의 기초 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이과 통합이 이공계 대학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공학한림원 응답자의 50%는 ‘수학, 과학 기초 저하로 대학 교육이 다소 퇴보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34.6%는 ‘대학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답했다.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15.4%에 불과했다. 고등학교에서 공통 수학, 과학만 배운 학생들이 이공계 대학 진학 후 일반물리학, 일반화학, 미분적분학 등 대학의 기초과목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란 우려를 반영한 결과다.
통합 교육과정 도입을 계기로 우수 인재들이 이공계 소양을 키울 수 있도록 대입 제도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게 산업계와 과학계의 요구였다.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현 교과과정과 대입 제도에서도 이공계 대학 신입생 상당수가 대학의 수학, 과학 기초 과목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문·이과 통합과정 후 이공계 대학 진학자의 기초 학력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입 제도와 대학 교육과정을 적절히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