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하고 외로웠던 사직구장의 마운드
'출장정지' 징계시 이동걸 2군행 유력
KBO, 규정 개정…2군서도 징계차감 가능
지난 1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일어난 '빈볼 논란'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이동걸에 대한 징계가 오늘 결정된다.
KBO는 오늘 오전 상벌위원회를 열고 롯데 황재균에게 빈볼을 던진 한화 투수 이동걸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벤치클리어링까지 발생한 점으로 미루어 이동걸은 제재금 200만원과 5경기 출장정지가 유력한 것으로 보이고 있다.
다만 이날 상벌위에서는 이동걸에 대한 여러가지 '사정'이 참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동걸이 자의로 빈볼을 던진 것은 아니다'라는 정황상 증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1) '2군 선수' 이동걸의 처지
이동걸은 올해로 프로 10년차의 베테랑이지만 1군에선 이날 경기를 포함해 단 23경기에 출전한 게 전부인 속칭 '2군 붙박이 선수'다. 게다가 문제의 경기는 이동걸의 올 시즌 첫 1군 등판이었다.
그러나 이동걸은 지난 시즌 퓨처스리그 다승왕이기도 했다. 고대하던 1군 무대에서 고의로 타자를 맞혀 퇴장을 자처할 리 없었다는 게 야구 관계자들과 팬들의 관측이다. 이는 큰 점수차에 도루를 시도해 한화를 자극한 황재균에게 꽂을 '복수의 칼'로 이동걸이 선택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 몸쪽 사인…그리고 세 번의 망설임
이동걸이 황재균을 맞히기까지엔 세 번의 시도가 있었다. 포수 허도환이 줄곧 몸쪽으로 같은 사인을 내렸지만 한 번에 맞히지 못한 것이다. 세 번째 공을 던지기 전엔 황재균에게 가까이 다가가 앉는 허도환의 모습과 일그러지는 이동걸의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동걸의 망설임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황재균을 맞힐 경우 퇴장과 징계는 당연한 수순이었고, 출장정지 징계를 받게 될 경우 1군 엔트리 말소 역시 기정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동걸의 표정은 자신에게 '황재균을 맞히고 2군으로 가든, 항명하고 2군으로 가든' 하나의 선택지만 남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비열하고 외로운 마운드였다.
한 2군 선수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이동걸의 표정을 보는데 가슴이 찡하더라"라며 "2군 선수라면 본능적으로 빈볼을 던졌을 때 더 이상 1군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황재균을 맞히는 데 3개의 공이나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왜 하필 이동걸에게 던지게 했나. 다른 투수들도 많은데"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화의 김성근 감독은 "벤치 지시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고, 롯데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익명의 선수가 "왜 하필 이동걸이었냐"고 일갈한 기사의 제목은 '이동걸의 야구인생은 누가 책임지나'였다.
(3) "저는 괜찮습니다"
이동걸은 빈볼 논란 이후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말씀도 드리기 어렵다"며 누군가의 지시에 의한 빈볼이었는지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는 "구단을 통해 말씀 드려야 할 것 같다"며 "말하기 어려운 상황을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상황이 복잡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상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우회적으로 피력한 것이다. 이런 소식이 알려진 직후 야구팬들 사이에선 김성근 감독과 한화 코치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이동걸에 대한 동정론이 확산됐다.
이동걸이 출장정지 징계를 받을 경우 한화는 25인 엔트리에서 투수 가용전력을 한 자리 잃게 된다. 때문에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이동걸을 2군으로 보내고, 다른 투수가 1군으로 콜업될 것이란 게 중론이다.
2군으로 내려갈 경우 지금까지는 출장정지 징계 일수 차감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KBO리그 각 구단 사장들은 14일 오전 이사 간담회를 갖고 이 규정을 손봤다.
1군 엔트리에 등록되지 않아도 해당 팀의 1군 경기 수에 따라 선수 개인의 출장정지 제재도 끝나는 것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를 테면 '이동걸법'이 통과된 셈이다.
홀로 악역을 맡고 쓸쓸히 2군으로 내려가야 했을 이동걸에겐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그래도 영 뒷맛이 개운치 않다. 있었을지 모르는 벤치의 지시, 혹은 동료, 선배의 지시에 대한 조사와 처벌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동걸이 사직구장에서 받은 야유는 그만의 것이 아니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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