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 고성(古城)의 하룻밤, 괴테의 숨결과 함께 달콤한 잠을~

입력 2015-04-20 07:10  

괴테의 흔적 찾아 떠나는 독일여행

아침엔…그가 걷던 포도밭 길 산책하고~
한낮엔…그가 사랑한 와인 마시고~
저녁엔…마인강 야경 보며 그의 시 한편을~

베르테르와 파우스트가 탄생한 다락방서 햇살을…
브렌타노 별장서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을 …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박목월 시인이 쓴 ‘4월의 노래’의 한 구절이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사랑하는 베르테르는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탄식한다. 로테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 권총으로 자살하고 마는 베르테르. 꽃잎이 거의 다 져버린 4월의 거리는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치고 사라진 베르테르의 삶을 연상케 한다. 괴테의 흔적은 독일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생가와 라인가우 지역의 고성에서 만난 거장의 숨결은 인문학적 유산을 그대로 보존한 독일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괴테의 고향에서 베르테르를 만나다

안개 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이곳에서 처음 느낀 것은 도시를 감싼 촉촉한 기운이다. 독일에서 많은 철학자와 작가가 탄생한 것은 이런 날씨 때문이라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프랑크푸르트’로 줄여서 불리는 이곳은 대문호 괴테의 고향이다. 당시 독일 문학은 주변 국가에 비해 그 수준이 낮았지만 괴테로 인해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그래서 독일 국민에게 괴테는 영국의 셰익스피어와도 같은 의미로 남아 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역에서 약 1.4㎞ 떨어진 괴테 생가다. 워낙 많은 여행객이 찾는 명소라 아무에게나 물어봐도 길을 잘 설명해준다. 괴테는 이곳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을 보냈다. 부엌과 식당이 있는 지상층, 음악실과 파티 룸이 있는 1층을 지나 우리 식으로는 3층에 해당하는 2층에 오르니 괴테가 태어난 방과 서재가 보인다. 황실 고문관이던 괴테의 아버지는 방대한 양의 서적을 이곳에 보관했고, 가정교사를 두고 이 방에서 아들을 교육했다고 한다.

괴테의 방은 그 위층에 있다. 차분한 녹색 벽지를 바른 다락방이다. 오후의 햇살이 스며드는 창가에 괴테가 글을 쓰던 책상이 놓여 있다. 바로 이곳에서 평생에 걸쳐 완성한 대작 ‘파우스트’의 초기 집필을 시작했다. 18세기 유럽 사회를 뒤흔든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여기서 탄생했다.

괴테는 당시 친구의 약혼녀 로테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했고, 그 무렵 대학 동창이 실연을 비관해 권총으로 자살한 사건을 겪었다. 그는 이 경험을 7주 만에 소설로 완성했다. 주인공 베르테르가 보내는 편지 형태로 된 이 서간체 소설은 단숨에 유럽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베르테르의 행동과 옷차림이 유행했고, 급기야 수많은 청년이 베르테르를 따라 자살을 시도했다. 동경하는 이를 모방해 목숨을 끊는 것을 일컫는 ‘베르테르 효과’라는 용어가 여기서 비롯됐다.


프랑크푸르트가 한눈에 들어오는 대성당

괴테 생가에서 몇 블록만 걸어가면 옛 시가의 중심인 뢰머 광장을 지나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이 나온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의 대관식이 열렸던 곳이다. 괴테도 이곳에서 당시의 유서 깊은 행사들을 지켜봤다고 한다. 여행자의 흥미를 끄는 것은 95m 높이의 성당 탑이다. 66m 지점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탑의 입구는 제대로 찾아온 건지 의아할 정도로 어둡고 좁다. 협소한 통로 안에 휘감긴 나선계단은 무려 328개. 빛도 잘 들지 않는 좁은 공간이 답답해 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나선계단을 빙글빙글 돌았다. 얼마나 올랐을까. 위에서 내려오던 다른 관광객에게 아직 많이 올라가야 하냐고 물으니 힘내라는 의미의 몸짓을 한다. 서로 길을 내어주기 위해 몸을 피해도 통로가 워낙 좁아 저절로 옷깃이 스친다. 한참을 더 오른 끝에 드디어 꼭대기에 이르렀다.

조그만 철문을 열고 나가니 프랑크푸르트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게 산에라도 오른 기분이다. 서쪽으로 괴테 생가가 있던 거리를 지나 라인강의 지류인 마인강이 유유히 흐른다. 강 건너편에는 박물관이 즐비하고, 그 옆으로는 나무로 집의 뼈대를 세운 독일의 전통 목골(木骨)가옥이 늘어선 거리 작센하우젠이 보인다. 멀리 현대적인 고층빌딩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여행객들은 프랑크푸르트의 과거와 현재를 한꺼번에 담아간다.


“맛없는 포도주를 먹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괴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서쪽으로 약 50㎞ 떨어진 라인가우 지역으로 자주 여행을 다녔다. 중세 고성과 아름다운 포도밭이 이어지는 라인가우는 독일을 대표하는 백포도주 리슬링(Riesling)으로 유명한 곳. 생전에 괴테는 “맛없는 포도주를 먹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포도주를 사랑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괴테와 인연이 깊은 브렌타노(Brentano) 가문의 여름 별장이다. 괴테는 평생 여러 여인을 사랑했는데, 그중 한 여인이 프랑크푸르트의 유명한 상인 브렌타노와 결혼한 막시밀리아네다. 그녀를 연모했던 괴테는 막시밀리아네가 브렌타노와 결혼한 후에도 집을 방문해 피아노를 치며 아이들과 놀아주고는 했다. 그 아이들 중 오빠 클레멘스는 독일의 시인으로 성장했고, 동생 베티나는 괴테와 어린 시절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엮어 유명 작가가 됐다.

이곳을 소유하고 있는 주인이 직접 내부를 안내하며 설명했다. “베티나는 어린 시절 열성적인 괴테의 팬이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또 다른 천재 베토벤을 괴테에게 소개해준 인물이기도 하죠. 훗날 베토벤은 괴테의 시에 곡을 붙여 ‘에그몬트 서곡’을 작곡하게 됩니다.”

여름 별장은 대중에 개방하고 있지만 미리 예약해야 방문할 수 있다. 주인은 작은 시골마을인지라 이곳을 잘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지금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집을 나서며 문패 아래의 안내 문구를 돌아봤다. ‘브렌타노의 여름 별장, 1814~1815년에 괴테가 방문하다.’ 약 200년 전에 괴테 역시 이렇게 떠났을 것이다.

괴테가 머물던 고성에서의 하룻밤

라인가우를 여행하는 동안 괴테는 유서 깊은 포도원들에 머물며 그의 체험을 일기에 기록했다. ‘길을 따라 걸으면 포도밭이 나오고, 버드나무가 어우러진 강가를 지나게 된다. 산기슭에는 ‘슐로스 폴라즈’ 성이 있다. 그 양쪽으로는 포도밭이, 뒤쪽으로는 참나무 숲이 이어진다.’

이 대목에 나오는 고성이자 포도원인 슐로스 폴라즈(Schloss Vollrads)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슐로스(schloss)는 독일어로 성(城)이라는 뜻이며, 폴라즈는 이 지역 영주의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1992년부터 괴테의 이름을 딴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다. 인근에는 ‘괴테 포도주’라고 부르는 것이 몇몇 있지만, 정식으로 괴테의 이름과 초상화를 상표에 쓰는 곳은 전 세계에서 단 한 곳, 슐로스 폴라즈뿐이다.

“로마 시대부터 포도가 재배된 이 땅은 1097년 귀족 그라이펜클라우 가문의 영토가 됐습니다. 그들은 14세기부터 성을 짓기 시작해 17세기에 완공했고, 19세기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시켰죠.”

성을 안내하기 위해 마중 나온 이곳의 매니저이자 포도 재배자인 크리스틴의 설명이다. 내부로 들어서니 넓은 정원 안쪽에 저택이 보이고, 그 앞으로 연못에 둘러싸인 높은 탑이 고풍스럽게 서 있다. 크리스틴의 안내를 따라 먼저 저택으로 들어섰다. 저택 안에는 수많은 방과 함께 귀족들이 사용하던 예배당과 약국도 있었다.

저택에서 나와 이동한 곳은 이곳의 상징인 탑. 잠겨 있던 문이 열리는 순간, 시간의 문이 열리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구텐베르크 시대의 고서적들이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성직자와 귀족들의 전유물이던 책이 대중에 퍼져 나간 시기에 탄생한 책들이다. 크리스틴이 흰 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고문서를 꺼낸다. 앞에서 설명한 포도주 판매 증서다. 1211년 11월18일이라는 날짜 아래 붉은 밀랍 인장이 찍혀 있다.


괴테가 그려진 포도주를 맛보다

크리스틴과 마주 앉아 저녁 식사와 함께 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중세 시대부터 왕가와 귀족에게 공급해온 최고급 포도주다. 고급스러운 에메랄드빛 병의 목〈?아름다운 음각이 새겨져 있다. 그 아래로 괴테의 초상화가 이어진다. 이 포도주의 이름은 괴테 라인가우 리슬링 드라이다. 달콤한 복숭아 향에 이어 부드러운 산미가 입안을 감싼다. 포도주를 마시면 마음이 즐거워진다는 괴테의 말이 실감나는 순간. 이 멋진 포도주는 곧 한국에도 들어올 예정이다.

“한국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로테(Lotte)의 이름을 딴 백화점이 있다죠? 그 백화점을 통해 한국에 곧 선보일 예정입니다.”

고풍스러운 유럽의 성들은 밤이 되면 고즈넉하다 못해 다소 으슥해진다. 그래서 고성에서의 하룻밤은 대개 근사하면서도 음산한 체험이 된다. 저마다 역사를 자랑하듯 유령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도 하나씩은 갖고 있다. 만약 오늘 밤 꿈에서라도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마주하게 된다면 이름 모를 유령이 아니라 부디 괴테이기를. 잊히지 않을 유산이 쌓인 이곳에서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프랑크푸르트 여행 정보

프랑크푸르트에는 두 개의 공항이 있다. 독일의 관문인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은 시내에서 16㎞ 거리에 있으며 다양한 노선이 취항한다. 시내에서 120㎞ 떨어진 ‘프랑크푸르트 한’ 공항은 저비용 항공사들이 주로 취항한다. 지하철인 우반(U-bahn)과 에스반(S-bahn), 버스, 트램을 하나의 티켓으로 이용해 시내에서 돌아다닐 수 있다. 종류는 1회권부터 단거리권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관광지가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으니, 여행자라면 필요할 때만 1회권을 사는 것이 좋다. 괴테하우스(goethehaus-frankfurt.de), 프랑크푸르트 대성당(dom-frankfurt.de)에 관한 정보는 각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라인가우 여행 정보

프랑크푸르트에서 라인가우까지는 차로 약 50분 걸리며, 기차로는 약 1시간 걸린다. 브렌타노 별장(brentano.de)은 미리 예약해야 방문할 수 있다. 슐로스 폴라즈(schlossvollrads.de)의 성문은 항상 개방돼 있으며, 안에는 레스토랑과 더불어 포도주를 파는 상점이 있다. 저택과 탑은 밖에서만 둘러볼 수 있고, 내부는 개방하지 않는다. 괴테 포도주는 금양인터내셔날(keumyang.com)로 문의하면 된다. 그 밖의 여행 정보는 라인가우관광청 사이트(kulturland-rheingau.de)를 참고할 것.

프랑크푸르트=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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