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철밥통을 깨지 못한다면
한국 대학의 미래 더 이상 없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저잣거리의 싸움은 늘 같은 패턴이다. 말다툼에 밀려 심사가 꼬인 쪽은 억지를 부리게 돼 있다. 화를 돋우는 게 급선무라는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다. 기다리는 건 상대방의 실수다. 서서히 열을 받아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상대방, 드디어 말실수를 해준다. 오호쾌재라. “너 왜 반말해”로 시작되는 주먹질에 싸움의 발단은 이미 관심 밖이다.
박용성 중앙대 재단 이사장의 퇴진이 꼭 그런 형국이다. 대학 구조조정에 반발하던 교수들은 보직 교수들이 흘려준 그의 ‘이메일 막말’에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본질을 가린 채 ‘앓던 이’를 뽑아내는 데 더 없는 호재 아닌가. 흑석동 선술집은 지금 교수들의 승전가로 꽤나 떠들썩할 것 같다.
박 이사장이 잘했다는 건 결코 아니다. 아무리 자신의 개혁 의지를 몰라주는 교수들이 야속하고 반개혁 세력의 반발이 기가 막힌다 해도 그런 식의 대응은 곤란했다. 그러나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의 막말과 중앙대가 지난 7년간 추진해온 구조개혁 노력은 전혀 다른 사안이라는 점이다.
중앙대의 7년 성과는 대단하다. 교수 연봉제, 기능형 부총장제도, 학문 단위의 구조조정, 학생들에 대한 엄격한 상대평가 등 하나같이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과제들이었다. 성과는 숫자로 나타난다. 영국 대학평가기관인 QS의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 중앙대 순위는 2009년 114위에서 지난해 68위로 점프했다.
그런데도 교수들은 왜 개혁을 극렬히 반대하고 있는 걸까. 흔히 ‘철밥통’이라고 한다. 대학 교수가 여전히 그런 자리다. 한 번 임용되면 65세까지 지위가 보장된다. 5년간 논문 한 편 쓰질 않아 학교가 1개월 정직 처분을 해도 교육부 산하 위원회가 팔을 안으로 굽혀 징계를 취소해줄 정도니 말이다. 중앙대에서 지난해 있었던 일이다. 그래도 사회는 학식 높은 교수님이라며 받들어 모신다. 그런 자리가 또 있을까. 그런 철밥통을 깨자는 얘기니 반발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중앙대 개혁의 핵심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워내겠다는 것이다. 입학한 뒤 학과를 결정하는 시스템이 기본이 된다. 단과대학별로 선발된 학생들이 충분한 탐색 기간을 갖고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사이 학생들은 학과를 넘어선 융합교육을 받게 된다. 자연·공학계는 1학년을, 인문·사회계는 2학년을 마친 뒤 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이렇게 하면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교수들의 반발은 여기서 비롯된다. 개혁안이 기초학문과 순수학문을 대학에서 도태시키려는 불손한 시도일 뿐 아니라, 학과를 폐지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조치여서 교수들의 위상에도 심각한 타격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인문·사회계 교수들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업 논리가 대학 사회를 지배하고 무식한 장사꾼이 인문학을 말아먹는다는 성명서가 연일 쏟아지는 이유다.
이들의 얘기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대학 진학률 80% 시대다. 미스매치는 말할 나위 없다. 자신들이 가르친 많은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해 제 밥벌이조차 못하는 현실이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기도 하지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00인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355개 사업장을 조사해봤다. 이들이 대졸 신입사원을 재교육하는 데 투입하는 시간은 평균 18.3개월, 1인당 비용은 대학 4년치 등록금보다 훨씬 많은 6000만원이었다. 이러고도 대학이 제 기능을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기초학문은 학부에서 교양으로 배우고 본격적인 학문은 대학원에서 하는 게 맞다. 열에 여덟이 대학 가는 시대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박 이사장은 물러났다. 중앙대 특혜 의혹 사건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중앙대의 구조 개혁이고, 그 개혁이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대학 개혁의 시금석이다. 곁가지와 줄기를 헷갈려서는 안 된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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