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자생력 강화·글로벌화 지원"
인력·기술·마케팅·판로 지원 등 기업 성장판 열어주는데 중점
세계 주요도시 전용매장 추진
"기업 도우려면 우리부터 혁신해야"
지원 기업 잘되면 인센티브…평가·성과보상 시스템 개편 등
관료주의·비효율성 싹 바꿀 것
[ 이현동 기자 ]
임채운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임기 중 일을 했다는 생색을 내기 위한 ‘임채운표 사업’ 같은 것은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이사장은 취임 100일을 앞두고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다른 기관, 대형 유통기업 등과 협업해 중소기업의 실질적 활로를 찾아주는 것이 핵심 임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사장이 바뀌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사업을 벌이고 이런 사업이 누적돼 중진공 조직의 피로도가 높아졌다고 그는 진단했다.
임 이사장은 중진공 설립 36년 만에 처음 나온 교수 출신 이사장이다.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출신으로 지난 1월 선임됐다.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그동안 중소기업 관련 정책은 이들을 사회적 약자로 봐 혜택을 베푼다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중진공 사업 중 70% 이상이 이런 안전판 성격입니다. 필요하긴 하지만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상품과 서비스 경쟁력, 인력, 경영자의 기업가 정신 등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수출만 해도 그렇습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에 따른 영역 확대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은 여전히 국내 내수시장 중심의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수출 중소기업은 8만6207개로 전체 중소기업(335만1404개)의 2.6%에 불과합니다. 또 100만달러 이상을 수출한 곳은 17%인 1만4446개에 그치고 있습니다.”
▶어떤 방향의 정책이 필요합니까.
“중소기업은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국내시장에서 비슷한 수준에서 경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지원방식도 바꿀 것입니다. 바이어 상담회 같은 일회성 지원으로는 한탕에 그치는 ‘장돌뱅이’만 양산하게 됩니다. 해외 시장에 대한 이해와 전략으로 철저히 무장한 현지화가 필요합니다. 중소기업은 해외시장을 좁고 깊게 파고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지 유통업체에 물건을 대신 팔아주는 바이어를 통해 중국 전역에 판매하는 것보다 몇 개 도시라도 현지 유통망과 접촉해 제품을 직접 납품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길입니다. 중진공을 비롯한 수출 지원기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실질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소기업을 위한 적극적인 현지 투자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중기 제품 전용매장을 주요 도시에 설치해 해외 유통망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하고, 공동 물류창고와 AS센터 등 ?짓는 방안 등이 대표적입니다.”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공공기관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기관별로 장벽이 너무 높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창업, 연구개발(R&D), 수출 등 지원 분야별로 중진공과 역할이 비슷한 기관들이 있고, 경쟁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각 기관이 가진 강점을 살려 시너지효과를 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예컨대 대관업무가 강점인 KOTRA는 현지 기관과 접촉해 비관세 장벽 등을 해결해주고, 네트워크가 좋은 중진공이 육성을 밀착 지원하는 식의 업무 분담이 가능합니다. ‘분업’과 ‘협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를 위해 유관 기관들과 적극적으로 논의해나갈 생각입니다.”
▶국내에서도 판로 개척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이 많은데요.
“국내 대형 유통업체들과의 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대백화점과는 곧 업무협약(MOU)을 체결할 예정입니다. 중진공 각 지역본부가 발굴한 유망 중기제품을 전용 브랜드화해 판매하는 방식입니다. 대형마트, 편의점, 홈쇼핑 업체들과도 협의하고 있습니다. 지난 4일에는 전자제품 전문점인 전자랜드프라이스킹 경기 고양시 일산점에 숍인숍 형태의 매장을 열었습니다. 중진공과 전자랜드 구매담당자(MD)가 고른 생활가전, 건강용품 등 23개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 매장을 16곳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글로벌 기반의 온라인몰과도 제휴를 논의 중입니다. 제휴 시 세계 40여개 국가에 한번에 입점하게 됩니다.”
▶대형 업체들과의 제휴는 일시적인 처방에 그치지 않을까요.
“중소기업은 뛰어난 상품은 갖췄지만 시장을 읽는 눈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상당수가 ‘제품은 좋은데 왜 안 팔리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제휴는 중소기업이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마케팅을 해야 하는지 등을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향후 판로를 개척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자회사인 중소기업유통센터의 정책매장도 계속해서 운영할 것입니다. 수익성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진입장벽을 낮추고 누구나 입점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영세 업체들이 경험을 쌓는 장으로 삼겠습니다.”
▶조직 혁신 작업은 어떻게 진행 중입니까.
“중소기업을 돕는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조직의 자생력을 키우는 데 집중할 생각입니다. 중진공은 그동안 이사장의 ‘입’만 보고 움직인 관료적인 조직이었습니다. 업무 프로세스도 비효율적이라 직원들의 업무도 과중했죠. 직원들이 ‘고객 지향적’ 사고를 갖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만든 것이 경영 혁신 조직인 ‘독수리’ 태스크포스(TF)입니다. 독수리는 70년을 살기 위해 35살 무렵부터 무뎌진 발톱, 깃털 등을 뽑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죠. 중진공도 이처럼 새롭게 태어나자는 각오를 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팀장급 직원 10명으로 구성된 팀원들은 매주 두 번씩 회의를 합니다. 업무프로세스 개선, 부서 간 협업 증진, 직원 개인의 역량 강화 방안 등을 논의합니다. 오는 6월까지 운영한 뒤 논의 결과를 토대로 조직 개편에 나설 계획입니다. 직원들의 의견이 반영된 ‘상향식’ 개선인 것이 특징입니다.”
▶직원들의 동기 부여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성과 보상을 확실히 할 것입니다. 각자 담당한 중소기업이 성공하면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도록 평가와 보상 시스템을 통째로 바꿀 것입니다. 또 임직원들의 전문성 강화에도 신경쓰고 있습니다. 국내 주요 유통업체의 최고경영자(CEO), 학계 전문가 등을 초청해 진행하는 교육을 크게 늘렸습니다. 기술직은 일반직 업무를, 일반직은 기술직 업무를 익히는 통섭 교육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인재 확보도 중소기업의 어려움 중 하나인데요.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하려면 외국어 능력과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마케팅 인력이, 기술력을 높이려면 고급 R&D 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국내 현실상 이 같은 인재를 중소기업 자체적으로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최근 중진공은 주요 대학들과 MOU를 맺고, 중소기업이 대학생을 인턴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향후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유학생이나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유학생을 중소기업과 연결해주는 프로그램도 만들 계획입니다.”
▶중소기업들은 일할 사람 구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합니다.
“지난해 8월 시작한 내일채움공제를 확대하는 데 집중할 것입니다. 이는 중소기업과 핵심 인력이 공동기금을 조성하고, 핵심 인력이 5년간 재직하면 적립한 금액을 성과급으로 직원에게 주는 방식입니다. 가입자를 지난해 4000여명에서 1만명 이상으로 늘려 중소기업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최종 목표는 ‘중소기업 인력양성 플랫폼’ 구축입니다. 우선 특성화고 인력양성사업 등을 통해 유입을 늘리고, 중소기업 연수사업을 통해 역량 강화에 나섭니다. 내일채움공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핵심 인재의 중소기업 장기 재직을 유도하면서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중진공의 사업 방향은.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국내 중소기업은 335만1404개(전체의 99.9%), 중소기업 종사자는 1305만9372명(전체의 87.7%)에 이릅니다. 하지만 전체 생산의 46%, 전체 수출의 18%를 담당하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이전 50년간 고속성장을 해온 우리 경제는 정체기에 들어섰습니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경제 성장 공식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고 봅니다. 중소기업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중진공도 인력, 기술, 마케팅, 판로 등 각 기업의 성장판을 열어주는 사업을 확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이현동 기자 gr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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