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사법원 키워 해양 리더십 장악을
윤성근 < 서울남부지방법원장 >
한국은 실질적으로 섬나라다. 우리의 눈부신 발전엔 바다의 힘이 컸다. 미래를 위해서도 바다는 중요하다.
로마는 바다를 통해 세계 제국으로 발전했고, 법을 통해 세계를 지배했다. 영국이나 미국도 바다를 발판으로 세계국가로 도약했고, 자국의 법 제도를 세계질서의 기준으로 내세움으로써 국제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사회에서도 전체의 이익을 위해 법질서는 불가결하다. 그 형성과정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다는 것은 평화적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전함을 앞세운 제국주의 전쟁은 끝났지만 법질서를 둘러싼 경쟁은 진행 중이며 그 과정의 치열함과 결과의 중대함은 전쟁에 못지않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법제도 중 상당 부분은 바다를 무대로 한 상호 교섭과정에서 형성됐다. 개별 항구에서 관습적으로 형성된 법규가 국제 해사법의 기초가 된 것이다. 해사법원은 이런 법규의 부화장이다. 준거법이나 관할을 놓고 일어나는 국제 경쟁도 치열하다. 그 승리는 국익에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도움이 된다. 영국이 아직도 세계적 영향 쩜?유지하는 큰 버팀목이며 영국 법률가들이 전 세계로 진출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중국은 1984년 해사법원을 설치한 뒤 전략적 노력을 통해 열 곳의 해사법원과 수백명의 우수한 해사 판사를 보유했다. 전 세계적으로 해사 판사는 많지 않아서 쉽게 국제무대에 알려지며 국제적 규범 형성에도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이런 경쟁에서 우리는 중국에 크게 뒤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동아시아 지역의 해사 분쟁이 중국 법원에서 재판받는 날이 머지않았다. 중국의 이런 성공은 지역 영향력 확대와 세계무대에서의 입지 강화로 나타날 것이다. 사법제도의 경쟁력은 핵심적인 국가 경쟁력이다.
한국은 무역 의존도나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극히 높다. 그런데 우리 국익에 긴요한 전략적 주요 해상운송로는 난사군도 등 분쟁지역이나 해적 출몰지역을 통과한다. 국제적 해상운송로의 안전 확보를 위한 다자간 협약과 그 실현을 위한 실효성 있는 지역 기구의 창설이 필요하다. 한국은 협약 형성과정의 주도권을 행사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바다는 법질서에도 열려 있다. 바다를 통해 지역 리더십을 확보하고 세계로 뻗어 가자. 해사법원이 그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
윤성근 < 서울남부지방법원장 skyline@scourt.go.kr >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