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밀컨

입력 2015-04-29 20:38   수정 2015-04-30 05:08

‘정크본드의 황제’로 불리는 마이클 밀컨은 매우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와튼MBA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드럭셸 증권사에 입사한 그는 1980년대 고위험 고수익으로 상징되는 정크본드 시장을 독자적으로 개척, 드럭셸을 5위 투자은행으로 만들고 스스로도 수십억달러의 돈방석에 오른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1989년 주가조작, 사기, 내부자거래 등 무려 98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는다. 22개월간 복역 후 출소한 뒤에는 자선사업가로 변신한다. 1991년에는 싱크탱크인 밀컨연구소를 설립, 1998년부터 매년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27일 시작된 올해 행사는 오늘 끝난다). 각국의 전직 총리, 전직 재무장관, 석학들과 글로벌 CEO 등이 세계경제와 교육 및 건강 등을 논의하는 이 행사는 이제 세계 최대 투자포럼이자 글로벌 금융계 사교의 장이 됐다.

롤러코스터 인생을 살고 있는 밀컨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정크본드 시장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한 그를 한편에선 금융혁신가로 칭송한다. 1980년대 당시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투자부적격 회사채 투자는 대박으로 이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신생· 중소기업들에 자금 숨통을 터줬다.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그를 그저 투기꾼 정도로 격하한다. 내부자거래로 감옥에 간 것만 봐도 돈에 눈이 먼 금떻映睡謗?불과하다는 것이다.

평가가 갈리듯, 그에게 붙여진 별명도 ‘정크본드의 황제’를 필두로 ‘천재 금융인’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자본가’에서 ‘추락한 천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흥미로운 것은 당초 98개 죄목으로 기소됐던 그가 어떻게 22개월 만에 출소했는가 하는 점이다. 유죄 판결을 받고 재산 몰수를 당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처음부터 그가 정부에 밉보인 ‘괘씸죄’로 구속 기소됐고 미국 정부도 그래서 재산을 몰수하지 않는 대신 금융계에서 영구 퇴출시켰다는 설도 있다.

금융의 역사를 보면 혁신과 투기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300여년 전 존 로의 ‘미시시피 버블’이 그렇고 존 메리웨더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숄즈가 만들었다가 1998년 파산한 롱텀캐피털의 사례가 그렇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던 부채담보부증권(CDO) 같은 파생상품도 마찬가지다. 밀컨은 아직도 금융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며 금융혁신을 꿈꾼다고 한다. 금융 수준을 한 단계 점프시킬 걸출한 밀컨급 금융혁신가가 한국에서 출현하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일인가.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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