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5월, 들길은 푸르고

입력 2015-05-01 20:33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바람은 넘실 천(千)이랑 만(萬)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빛 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버리련?’

김영랑 시 ‘오월’은 언제 읽어도 청량하다. 밭이랑 사이로 바람에 흔들리는 보릿대는 수줍은 시골처녀의 허리 같다. 하지만 봄날이 마냥 새뜻한 것만은 아니어서 때로는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드는 ‘찬란한 슬픔의 봄’이 되기도 한다. 긴 겨울 동안 수확이 없어 배고픈 ‘보릿고개’가 이때요, 이팝나무 꽃 필 무렵엔 딸네 집에도 안 간다는 춘궁기(春窮期)가 이 시기다. 보릿고개는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계획 이후에야 없어졌다.

우울증이 많은 달도 5월이라고 한다. 봄 분위기가 무르익는 시기에 왜 그럴까 싶은데, 상대적 박탈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메이데이(노동절)가 유래한 것도 마찬가지리라. 5·16과 5·17, 5·18로 이어진 현대사의 격변기도 5월이다.

5월엔 ‘가정의 달’ 행사가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 날, 스승의 날, 가정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여기에 직장이나 학교 동료들의 결혼까지 챙기다 보면 쉴 날이 없다. 설과 추석에는 떡값이라도 나오지만 이때는 지출 항목만 늘어난다. 가욋돈이라도 벌었다면 종합소득세까지 내야 하니 허리가 휜다.

한편으로는 계절의 여왕답게 온갖 축제와 볼거리, 먹거리가 풍성한 게 5월이다. 이달 내내 담양대나무축제, 문경전통찻사발축제, 산청지리산한방약초축제, 보성다향제, 춘천마임축제 등이 이어진다. 군포 철쭉대축제(자연), 공주 석장리구석기축제(역사), 남원춘향제(예술), 울산고래축제(해양), 함평나비축제(지역)처럼 주제도 다양하다. 대학 캠퍼스도 일제히 축제 열기로 달아오른다.

먹는 즐거움 역시 풍요롭다. 요즘 제철음식으로 체력증진과 원기회복에 좋은 장어를 비롯해 주꾸미, 멍게, 소라, 키조개, 다슬기, 두릅, 취나물 등이 한껏 맛깔스럽다. 생명이 움트고 자라는 계절적 특성 때문일까. 신록이 푸르러가는 만큼 가족의 소중함을 함께 새기게 되는 5월. 괴테도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5월, 너! 현기증 나는 생명의 춤이여!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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