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희은/박상용 기자 ]
지난달 27일 서울역 지하도에서 만난 김모씨(47)는 18년째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작년 말부터 올 3월까지 교회와 복지재단 등에서 운영하는 쉼터를 오가다 날씨가 풀린 지난달부터 서울역 지하도로 ‘복귀’했다. 고아로 자라 보호시설을 전전하던 그는 외환위기 직후 서울역 노숙인 대열에 합류했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하지만 두 달 전 서울역 희망지원센터에서 받은 두툼한 점퍼 덕분에 견딜 만하다. 그의 하루는 오전 4시에 시작된다. 서울역 2번 출구로 나와 15분 정도 걸어가면 브릿지종합지원센터에서 4시30분부터 아침을 준다. 배식시간보다 최소 5분은 일찍 도착해야 ‘안전’하다. 식사를 마치니 5시. 서울역 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안면이 있는 몇몇 노숙인과 소주를 마신다.
오전 7시30분에는 서울역 13번 출구로 간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따스한 채움터’에서는 쌀밥과 순대, 시금치 무침, 김치를 흰색 그릇에 담아 준다. 혹시 새벽에 마신 술냄새가 날까 걱정된다. 주취자에게는 배식하지 않는 게 원칙이어서다. 다행히 노숙인 출신의 채움터 봉사자는 별다른 말 없이 그를 들여보냈다. 아침에 두 끼를 먹은 김씨는 든든해진 배를 두드리며 지하도로 돌아와 잠을 잤다.
낮 12시가 조금 지나 눈을 뜬 김씨가 지상으로 나와보니 서울역 광장에서는 길거리 예배가 한창이다. 목회자 앞에 15명 안팎의 노숙인이 줄지어 앉아 “아멘”을 복창하고 있다. 김씨도 그들 무리에 꼈다. 30여분의 예배가 끝난 뒤 김씨는 다른 노숙인들과 함께 동자동에 있는 교회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주는 점심을 먹고 세탁할 옷가지를 교회 봉사자에게 맡긴 뒤 그곳을 나왔다.
다시 서울역 광장으로 돌아와 친한 노숙인들과 함께 컵라면에 소주를 먹기로 했다. 지난주 일요일 노숙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 예배에 가서 받은 돈을 모아 편의점으로 갔다. 컵라면을 먹겠다고 하자 점원이 직접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갖고 나왔다.
오후 6시. 상반기 노숙인 결핵검사를 위해 서울시에서 나온 의료지원 차량이 서울역 2번 출구 희망지원센터 옆에 자리 잡았다. 자원봉사자들의 통제 아래 30여명의 노숙인이 줄을 섰다. 30분가량 기다려 검사를 마치고 나온 김씨의 손에는 믹스커피와 간식이 쥐여 있었다. 아침부터 줄줄 나오는 콧물도 심상치 않다. 희망지원센터 안에 있는 무료 진료소를 찾아 감기약을 무료로 처방받았다.
저녁은 아침 점심에 비해 먹기 힘들다. 마침 오후 7시에 외국인 봉사단이 노숙인에게 빵과 우유를 나눠주는 모습이 보여 하나씩 챙겼다. 하루가 그렇게 갔다.
윤희은/박상용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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