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은 불평등 심화 억제하는 '자생적 힘'…자본·학력 아닌 혁신 경쟁이 '부의 이동' 이끌어

입력 2015-05-01 20:48  

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10> 양극화 견제하는 기업가 정신

혁신상품 개발하거나 생산비 낮추는 기업가 정신이 경제성장 이끌고
기존 부자 '무한한 富의 축적'도 견제

억만장자 100명 중 73명 자수성가
이윤기회 포착·혁신 위해 필요한 건 대학졸업장 아닌 직관·인지적 리더십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주의는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대안으로 자본주의를 수용하는 것은 꺼린다. 소득 불평등 때문이다. 그래서 재분배 과세 또는 규제를 통해 시장의 분배를 수정하는 제3의 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자본주의 비판자들은 능력, 재산, 상속 등을 가진 자는 더욱더 부자가 되게 하고 갖지 못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가난하게 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게 자본주의 논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의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유명한 ‘마태복음 효과’를 이용하기도 한다. 마태복음 효과는 마태복음서 25장 29절의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더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구절에서 나온 것이다. 원래 이 명칭은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처음 만든 것인데, 그는 과학적 업적이 동일하다고 해도 잘 알려진 과학자를 덜 알려진 과학자보다 더 신뢰한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양극화 체제로 보는 그 같은 논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인소득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오로지 출신배경, 자본, 노동, 능력 등의 자원만을 들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모든 분배 관련 논의에서 기업가 정신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방해하는 치명적인 장애물이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기업가 정신과 경쟁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원동력이 아닌가. 따라서 이 원동력을 무시하고 분배논리를 주장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오해를 불러와 반(反)자본주의 정서만 강화시킬 뿐이다. 분배논리에서 기업가 정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최영백 세인트존스대 교수의 인식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업가 정신은 경제 성장만을 야기하는 게 아니라 부의 축적도 견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시장경제를 탄생시킨 문화적 진화는 소득 불평등 심화와 개인 부의 축적을 방관하지 않았다. 그것은 불평등 심화를 가로막는 자생적 힘이 작용하도록 견제장치를 마련했다. 그 장치가 기업가 정신과 경쟁이다. 자유주의의 거성 하이에크가 경쟁을 소비자의 수요와 더 나은 생산방법을 발견해 나가는 절차라고 말했듯이 기업가적 경쟁의 본질은 창조와 혁신이다. 이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새로운 것을 창출하고 타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이윤기회를 포착하는 기민성이다.

마차를 공급해 떼돈을 벌고 있는 백만장자가 있다고 하자. 기업가 정신과 경쟁은 무한정으로 부를 축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새로운 기술개발로 기존의 마차보다 값싸고 질적으로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파는 혁신가들이 등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자동차, 기차 등 마차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운송수단을 개발한 혁신기업이 등장한다.

대체상품을 개발하거나 생산비용을 낮추는 기술개발을 통해 싼값으로 공급하는 그런 혁신경쟁으로 경제는 성장하면서 원래의 마차 생산업자의 삶을 더 이상 쉽지 않게 만든다. 그의 기업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누리던 부자의 위치가 흔들리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가 정신과 경쟁은 경쟁자들이 기존의 부자를 추격·추월하는 과정이라는 걸 주지할 필요가 있다. 시장에서 부자는 늘 그런 추격·추월을 당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 혁신적 기업가가 등장해 현재의 부자를 추격하면 그의 부는 감소하고 소득격차가 줄어든다. 추격 과정에서 기존의 부자가 누리던 이윤의 일부 또는 전부가 경쟁자들에게로 이전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이윤의 사회화 과정’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부의 무제한 축적을, 그래서 불평등의 심화를 억제하는 자생적 힘이라는 걸 주지해야 한다. 부의 축적을 통제하고 견제하는 과정이다. 혁신을 통해 원래 부자의 부를 추월해 부자의 순위가 뒤바뀔 수도 있다. 혁신경쟁은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는 ‘사회적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경쟁자들의 혁신으로 부자가 중산층이나 하류층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기업가 정신이 유익한 기회, 새로운 지식의 발견을 뜻한다면, 括渼?이윤기회를 포착하는 데 이점이 있는가. 혁신경쟁에서 현재 가진 자가 갖지 않은 자보다 유리한가. 이윤기회를 발견할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서는 교육도 필요한 게 아닌가.

기업가 정신은 재산 소유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이스라엘 커즈너의 인식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저렴한 필요재원을 발견하는 것 그 자체도 기업가 정신의 소관이기에 자원 소유가 기업가 정신의 전제조건일 수 없다. 기업가 정신에는 교육도 필요없다는 자유주의 거성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생각이 떠오른다. 기업가에게 필요한 건 경영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예리한 예견, 판단, 직관 그리고 인지적 리더십이다. 그런 기업가 정신은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기에 알려진 것을 가르치는 교육과 무관하다. 경영학 교육은 경영자가 되는 교육일 뿐이다. 따라서 재산도 없고 양질의 교육을 받을 돈도 없는 가난한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는 게 자본주의다.

이런 생각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게 혁신경쟁에서 가난한 사람이 기존의 부자보다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최영백 교수의 흥미로운 인식이다. 사업 실패자, 학교 중퇴자, 이민자처럼 가난한 야심가는 이윤기회의 인지전략에서 매우 유연한 반면 부자는 경직·보수적이라는 이유에서 부자가 자신의 부를 유지하기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그를 추격·추월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기업가 정신은 재산이나 교육을 전제하지 않고 또 그것은 ‘헝그리 정신’에서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부의 축적과 소득 불평등의 심화가 견제된다. 기업가 정신은 자금이나 교육을 전제하지 않기에 돈이 없어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게 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배우지 못했어도 거부가 된 인물들이 아주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대표적이다. 무일푼의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것도 기업가 정신 덕이다.

세계 각국 100명의 억만장자 가운데 자수성가한 사람이 73명이었고 가난한 집 출신으로 대학을 나오지 못한 부호가 8명이나 된다는 최근의 보고도 흥미롭다. 따라서 기업가 정신과 경쟁을 통해 부의 축적을 견제하는 게 자유시장이라는 걸 직시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게 자본주의 논리라는 오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 승자독식 ‘마태복음 효과’의 허구
美 소득 최하위층 25%, 기존 부자 밀어내고 최상위 계층으로 이동

‘마태복음 효과’에 속하는 분배논리는 다양하다. 가장 강력한 게 자본의 노동착취를 말하는 마르크스, 능력 있는 소수의 사람이 부를 독차지한다는 로버트 프랭크의 ‘승자독식’이 그에 속한다. 자본이 부의 불평등 원인이라는 토마 피케티, 출신배경 때문에 양극화가 초래된다는 존 롤스의 주장도 개인이 가진 자원이 개인의 경제적 성공을 좌우한다는 마태복음 효과의 논리다.

자본주의가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논리는 유감스럽게도 1810년부터 2010년까지 유럽과 미국 상위 10% 또는 1%가 가진 부의 분배율 변동과 일치하지 않는다. 개인들이 능력, 재산 등 자원이 많다고 해도 부자들의 부의 축적을 가로막는 요인은 많다. 불운을 만나거나 부자를 노리는 ‘미모의 사냥꾼’에 잡히거나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런 요인들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이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1975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 가난한 계층의 신분상승 통계가 보여준다. 1975년 최하위 20%에 속한 사람 중에 5%만이 1991년에도 여전히 가난했다. 나머지 95%는 사다리 위쪽으로 이동했다. 그중에서 80%는 중산층 또는 상류층으로, 그 3분의 1은 최상위 20%로 이동했다. 그 결과 기존의 부자들이 밀려났다.

양극화는 단기적 현상을 기술할 뿐, 장기적 추세가 아니다. 흥미롭게도 소득과 부의 분배는 장기적으로는 매우 안정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주장이다. 마태복음 효과를 발견한 로버트 머튼도 과학에서 관찰된 그런 효과는 단기적 현상이라는 이유로 부의 분배 법칙으로 일반화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한다.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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