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로 가는 혈관 근육 마비시켜 통증 관련 신경물질 차단
긴장성 두통 主원인 '근막유발점', 주삿바늘로 찔러 없애면 완화
진통제 과다 복용 땐 역효과…두통 잦다면 커피·술 자제를
[ 이준혁 기자 ]
제약회사에 다니는 김모 부장(53)은 지난해 말부터 목 뒤가 뻐근하고 당기면서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김 부장은 대학병원에서 뇌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까지 했지만 두통을 일으킬 만한 원인 질환은 발견되지 않았다. 근육이완제·신경안정제·항우울제 등을 처방받아 복용해도 증상이 딱히 가라앉지 않았다.
김 부장의 주치의인 남상건 분당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과도한 스트레스, 사무실에 오래 앉아 있는 습관 등으로 인한 긴장성 두통으로 진단했다. 남 교수는 김 부장의 머리·목·어깨 주변 근육을 손으로 눌러 다른 신체 부위의 통증을 초래하는 ‘활동성 근막유발점’ 4곳을 찾아냈다. 김 부장은 근막유발점을 풀어주는 주사와 물리치료를 2주간 병행하고 나서야 두통이 사라졌다.
긴장성 두통의 원인 ‘근막유발점’
대한두통학회에 따르면 전체 두통의 70~80%를 차지하는 긴장성 두통의 주요 원인은 근막유발점이다. 근막유발점은 스트레스, 잘못된 자세, 외상 등으로 근골격계에 긴장이 생길 때, 전신 근육 곳곳에 생기는 0.5~2㎝ 정도로 작고 단단하게 뭉친 부위를 말한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심한 통증과 미세한 수축 등이 생기는 지점이 있는데, 이곳이 근막유발점이다.
근막유발점이 왜 생기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염증 반응이거나 혈액순환 장애 때문일 것이라는 등 의사마다 의견이 다르다.
남 교수는 “누른 곳이 아닌 주변의 다른 부위가 아프면 ‘활동성 근막유발점’”이라며 “활동성 근막유발점이 머리·목·어깨 주변에 생기면 심한 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머리나 목 뒤가 뻐근하고 당기면서 무거운 느낌이 지속되는 긴장성 두통의 70~80%는 활동성 근막유발점이 원인”이라며 “근막유발점은 쇄골에서 시작해 귀 뒤쪽으로 뻗어 있는 목빗근에 65% 정도로 가장 많이 생기고, 이어 목에서 양어깨로 뻗은 등세모근에 15%, 목 뒷근육에 10% 정도 생긴다”고 말했다. 초기 긴장성 두통은 근막유발점에 온열요법 등 물리치료를 하면서 두통약 치료를 병행한다. 이 정도로 좋아지지 않으면 근막유발점을 주삿바늘로 찔러 파괴한다.
주삿바늘만 근막유발점에 찔러 넣기도 하고, 스테로이드 마취제 생리식염수 등을 주입하기도 한다. 남 교수는 “주사로 근막유발점을 파괴한 뒤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2주간 더 받아야 효과가 높다”며 “하지만 두통이 매달 15일 이상 3개월 넘게 이어지는 만성 두통 환자의 절반 정도는 근막유발점 치료로도 증상이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다 진통제 복용, 통증 더 심해져
만성 두통 환자들은 보통 진통제를 많이 먹는다. 하지만 진통제를 많이 먹으면 오히려 두통이 심해질 수 있다. 특히 머리가 깨질 듯 아픈 편두통 환자가 한 주에 일반 진통제·편두통 약을 이틀 이상 복용할 경우 약물 과용으로 인한 만성 두통이 우려된다.
김재문 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대한두통학회 회장)는 “만성 두통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진통제 남용”이라며 “진통제는 두통과 관련된 신경을 흥분시키고 중추감각을 자극하는데, 신경계의 흥분도가 커지면 통증의 역치(자극에 반응하는 강도)가 감소해 머리가 쉽게 자주 아프다”고 말했다.
진통제 부작용은 편두통 전문 치료제를 한 달에 10일 이상 3개월 이상 복용하거나, 단순 진통제를 한 달에 15일 이상 3개월 이상 복용할 때 종종 발생한다. 그렇다고 진통제를 바로 끊어버리면 두통·구역질·구토·불면증·저혈압·정서불안 등 금단 증상이 나타나기 쉽다. 따라서 처음부터 진통제를 습관적으로 먹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김병건 을지대 을지병원 신경과 교수는 “지속적으로 통증이 생기면 병원을 방문해 통증의 원인이 뭔지 알아보고,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보톡스 주사로 만성 두통 완화
편두통이나 매일 두통약을 복용하는 만성 두통, 약을 세 가지 이상 먹어도 듣지 않는 난치성 두통 등 중증 두통 환자에게 보톡스 주사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3년 세계두통학회에서 보톡스의 두통 치료 효과에 관한 대규모 연구 결과를 발표된 이후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데이비드 도딕 미국 메이요클리닉 박사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통 환자 1200명을 대상으로 두피 40곳에 보톡스를 주사하자 환자 중 40%가 3~4개월간 통증 횟수와 강도가 줄었다.
전문가들은 보톡스가 뇌로 가는 혈관 주변에 있는 근육을 마비시켜 통증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막고, 통증을 느끼는 통증 수용체를 변화시켜 두통을 완화한다고 추정했다. 주민경 한림대 평촌성심병원 신경과 교수는 “편두통 환자나 만성 두통 환자 중 약물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체중 증가 등 부작용 때문에 약 복용을 꺼리는 사람에게 보톡스는 매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보톡스 주사의 가장 큰 장점은 매일 약을 달고 살아야 하는 약물치료와 달리 주사를 한 번 맞으면 3~4개월간 효과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뒤통수·뒷목·어깨·이마에 있는 근육 40곳 정도에 0.1~1㎝ 깊이로 4㏄가량의 약물을 나눠 주입하는 방식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일시적으로 생기는 긴장성 두통보다 편두통 등 만성 두통 환자에게 효과적이다.
음식으로 두통 완화하려면
편두통은 스트레스와 음식, 환경 변화, 햇빛과 같은 여러 인자에 의해 뇌혈관이 수축 확장을 반복하면서 발생한다. 만성적이고 쉽게 재발하기 때문에 진통제 ?남용하기 쉽다. 특히 편두통은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서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철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민감해질 수 있는 주변 환경을 바꾸면 편두통 완화에 도움이 된다”며 “두통이 잦은 사람은 커피·차·코코아·초콜릿·딱딱한 치즈·크림·피클·정어리 등 카페인이나 알코올이 함유된 음식을 가급적 줄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껌을 자주 씹는 사람도 편두통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 반복적으로 씹는 운동은 위·아래턱 주변 근육을 경직시켜 근위축성 두통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화학약품도 좋지 않은데 페인트나 향수, 각종 유기용매에서 나오는 냄새는 편두통을 부를 수 있어 주의하는 것이 좋다.
도움말=김재문 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 남상건 분당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주민경 한림대 평촌성심병원 신경과 교수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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