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개악 안된다 전했는데 당 지도부에 배신당했다"
당·청 조율 이뤄지지 않아…노동 개혁 등 갈등 커질 듯
[ 정종태 기자 ]
공무원연금 수정에 대한 여야 합의안 도출 시한을 이틀 앞둔 지난달 30일 청와대 기류는 복잡했다. 당시 여야는 연금개혁 실무기구에서 내놓은 잠정안(기여율을 7%에서 9.5%로 올리고, 지급률은 1.9%에서 1.7%로 낮추는 안)을 놓고 절충을 시도하고 있었다. 청와대의 한 수석비서관은 “당초 목표에는 못 미치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이 노동·공공·금융·교육 등 4대 부문 개혁의 단초 역할을 하는 만큼 낮은 수준에서라도 합의를 도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더 내고, 덜 받는’ 식의 공무원연금 수정을 통해 절감한 재정의 일부를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강화에 투입하자는 새로운 조건을 내세운 것에 대한 언급이었다. 이 수석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취지가 재정 파탄을 미연에 막자는 것인데 아낀 재정을 공적연금에 투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여당 지도부 역시 이 문제에 관한 한 강경한 입장이니 두고 보자”고 했다. 새누리당 지도부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여야가 지난 2일 전격 타결한 합의안은 청와대 예상을 빗나갔다.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사회적 기구를 만들어 재정 절감 분의 20%를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투입하는 방안을 논의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여기에다 논의 과정에서는 없던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을 현재 40%에서 50%로 올리는 방안도 들어갔다.
청와대는 ‘혹을 떼려다 혹 하나를 더 붙인 셈’이 됐다. 한 관계자는 “믿었던 여당 지도부에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을 올리는 것은 연금의 개혁 방향과 거꾸로 가는 것일 뿐 아니라 연금보험료 인상을 수반하게 돼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정치권의 분명한 월권이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려다 더 큰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을 개악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2일 여야 합의안이 발표되기 전 이 같은 우려를 조윤선 정무수석을 통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당 지도부는 청와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연금 개혁의 내용보다는 타결 시한을 맞춰야 한다며 야당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까지 합의안 도출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게 청와대와 여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한마디로 청와대의 말발이 먹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무원연금 수정 논의 과정에서는 애초부터 당·청 간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가 무르익은 최근 한 달간 이완구 전 국무총리 거취 문 ┗沮?겹쳐 고위 당·정·청 회의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실무회의는 몇 차례 열렸지만 여당 지도부는 여기서 논의한 내용은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4·29 재·보궐선거 승리를 계기로 당의 주도권이 강해진 만큼 노동시장 개혁 등 나머지 분야 개혁 추진 과정에서도 당의 논리가 우선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당·청 간 갈등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