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촌공사 - 연차휴가도 당겨 사용 "긴 여행 떠나기엔 딱이죠"
[ 김명상 기자 ]
쉬지 않고 일에 치이다 보면 에너지가 바닥난다. 심하면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에 빠져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의 문제가 생긴다. 그 피해는 그대로 기업에 미치기 마련. 많은 기업이 직원들의 휴가 사용을 적극 독려하는 이유다. 휴가는 단지 ‘쉬는 것’이 아니라 활기차게 일하기 위한 자기 정비요, 투자다.
5월 관광주간을 맞아 휴가문화 개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모범 사례는 이미 나와 있다.
지난해 ‘한국관광의 별’ 시상식에서 한화케미칼과 한국농어촌공사는 각각 휴가문화 우수 기업과 우수 기관으로 선정됐다. ‘신도 부러워하는 휴가문화’를 가진 업체들은 대체 어떤 제도를 시행하고 있을까.
최대 16일의 휴가를 떠나다
한화케미칼에는 외국계 기업 못지않은 ‘리프레시(refresh)’ 휴가제도가 있다. 한마디 ?‘1년에 영업일 기준 10일의 휴가를 써야 하는 제도’다. 직원들의 재충전을 위해 마련된 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자유롭게 장기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10일을 한꺼번에 쓸 수도 있다. 주말은 계산되지 않는 만큼 총 2주간의 휴가를 가질 수 있다. 앞뒤로 연결된 세 번의 주말을 포함하면 최대 16일간 휴가가 이어진다. 일반 직장인이 1년에 한꺼번에 쓸 수 있는 휴가일은 여름휴가 시즌의 3~4일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이다.
한화케미칼은 연초에 각 팀에서 휴가 계획서를 받는다. 이후 7월 및 10월에 인사팀에서 잔여연차 일수를 개별적으로 통보해 임직원의 휴가 사용을 독려한다. 휴가 사용 실적이 저조할 경우 팀장들은 연말 평가에서 감점을 받는다. 팀장부터 솔선수범해서 리프레시 휴가를 사용하는 만큼 상급자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특징. 그 결과 지난해 리프레시 휴가 사용률 99%에 달했다.
그냥 휴가만 챙겨주는 것이 아니다. 리조트, 호텔, 음식점, 스파 등의 사용권을 지급해 가족여행을 돕는다. 장기휴가로 인한 업무 공백은 대체자를 지정해 업무 부담을 제도적으로 경감시킨다.
2013년 한국인의 근로시간은 216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국 중 2위. 이 점에 비춰본다면 여느 외국계 기업 부럽지 않은 휴가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가 주관한 ‘일하는 방식 문화개선 캠페인 대국민 선포식’에서 방한홍 한화케미칼 대표이사는 직접 자사의 휴가제도를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한화케미칼은 모든 임직원에게 연차휴가 외에 4일의 유급휴가를 추가로 준다. 심지어 법정휴가제도가 적용되지 않는 신입 玲便?유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육아 휴직과는 별도로 신청 가능한 모성보호 휴가제도(최대 6개월), 임신이 어려운 기혼 여성 직원들에게 난임 치료에 필요한 시간을 주는 임신지원 휴가제도(연간 최대 90일), 취학 초기 자녀의 학교생활 적응을 위한 취학 전후 돌봄 휴가(입학일 기준 최대 30일), 가족의 질병·사고 등의 경우에 쓸 수 있는 가족 돌봄 휴가제도(연간 90일) 등도 시행 중이다.
한화케미칼 측은 “자유로운 휴가 사용의 활성화를 통해 직원들 삶의 질을 높이고 업무 능률 향상을 도모하고 있어서 반응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부서원의 연차휴가 사용률을 높여라
휴가도 가불받을 수 있다? 대부분 잘 모르고 있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의 편의를 위해 미리 가불 형식으로 연·월차 휴가를 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쓰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 연차휴가를 미리 가불한 근로자가 1년간 계속 근무하지 않고 중간에 퇴직하는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기관 중 이러한 제도를 과감히 도입한 곳이 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2013년 10월부터 ‘연차휴가 가불제’를 운용 중이다. 1년 이상 휴직자에 대해 다음연도 연차 중 최대 5일을 미리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연차휴가가 부족한 장기 휴직자에 대한 배려도 포함돼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연차휴가 이월제’를 도입했다. 개인별 연차휴가 일수의 20% 내에서 최대 2년간 이월시킬 수 있도록 했다. 개인별로 장기계획에 맞춰 휴가를 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제도만 갖추고 잘 쓰지 못하면 유명무실하게 된다. 한국농어촌공사는 휴가 사용을 내부 경영평가에 반영한다. ‘연차휴가 활성화 노력도’ 평가지표를 통해 부서원의 연차휴가 사용률이 80% 이상 돼야 만점을 받게 된다. 평가 결과는 부서 성과급 지급 및 관리자 평가에 영향을 준다. 휴가를 쓸 때 눈치를 보는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한국농어촌공사의 지난해 1인당 평균 연차휴가 사용일수는 17.1일에 이른다.
하루 또는 반일 단위 연차휴가를 시간 단위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 단위 연차휴가도 도입했다. 1일 최소 1시간, 최대 8시간으로 나눠서 쓸 수 있다. 병원진료, 예방접종 등에 유용하다. 아울러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쓸 수 있는 ‘가족친화 휴가’, 주말부부 및 장거리 출퇴근 직원을 위한 당연휴가, 연휴에 1일 이상의 휴가를 주는 휴일연장 휴가 등도 시행 중이다.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는 “다양한 형태의 연차제도 도입으로 직원의 자기계발 기회 확대에 도움을 주는 동시에 가족친화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명상 기자 t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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