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해외 배출권 수입 늘려
엔저공세 직격탄 기업부담 덜어줘야"
백광열 < 연세대 기후금융연구원장 >
이명박 정부 때 외국 컨설팅업체가 한국에 소개한 유럽식 배출권거래제를 오랫동안 직접 경험한 일본은 유럽 제도가 제조업 강국인 일본의 경쟁력을 파괴한다는 걸 이해했다. 일본은 2010년부터 총리 비서실, 경제산업성,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대학, 종합상사를 통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원자력발전, 지하철, 현지 진출 일본 공장 내 설비물 등을 대상으로 400여개의 탄소배출권 타당성 조사를 진행했다. 이 조사 결과로 자신을 얻은 일본은 교토협약에서 탈퇴해 유엔 제재를 안 받고 대외 원조를 탄소배출권으로 변형시켜 일본으로 수입하는 새로운 제도를 마련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에 있는 냉각기를 일본산 최신 제품으로 바꿔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그 차액을 탄소배출권으로 변형해 일본으로 수입하는 것이다. 경제산업성은 일본 기술과 상품의 수출 가능성을 계산해 프로젝트를 선별하고, 재무성은 JICA와 국제협력은행(JBIC)을 통해 무상자금을 제공하며, 외무성은 피원조국 정부와 설립한 ‘양자(兩者) 탄소기구’를 통해 탄소배출권을 생성시켜 수입하는 것이다. 대외 무상원조를 변형시킨 이 제도는 일본 기업들만 참가할 수 있어 투자비를 다시 일본으로 회수하는 자국 기업 보조인 셈이다. 유럽은 제도적으로 조건부 원조를 못하지만 일본은 그런 국내법이 없다는 점을 이용해 이를 시작했다.
유럽식 체제를 모방한 한국의 경우 배출권의 경매식 거래제가 요구되지만, 일본은 한국과 달리 탄소를 금융자산화하지 않고 자원으로 거래해 탄소의 유가증권화와 거래소를 배제함으로써 배출권 비용을 현저히 낮췄다. 탄소 감축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더불어 일본에 이익이 되는 자국 기술의 전파와 상품의 수출 증가를 꾀하면서 현행 유엔 배출권제도의 문제점과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일본은 유럽식 배출권제도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묵인 아래 베트남 인도네시아 몽골 에티오피아 멕시코 캄보디아 라오스 등을 포함한 12개국과 ‘양자 탄소배출권 협약’을 맺고 탄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이 배출권의 전량 수입 전략을 선택한 것은 ‘배출 감축 한계비용’ 때문이다. 배출권거래제에 가장 신뢰를 받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배출권 경제분석 모델’을 보면 일본이 국가 단위로 탄소 배출을 10% 감축할 경우 한계비용은 t당 100달러, 20% 감축은 t당 200달러가 넘는다. 30% 감축의 경우 한계비용이 t당 500달러가 넘어 미국의 180달러, 유럽의 270달러보다 훨씬 높다. 배출 감축량이 커지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마른 수건 쥐어짜기 현상으로 처음 1t 감축경비가 10이면 그 다음 1t은 20, 그 다음 1t은 50식으로 비용이 늘어나는 것이다.
30% 감축을 舟Ⅷ?하는 한국이 그 절반인 15%를 수입으로 대체할 경우 총비용은 반으로 줄어드는 게 아니라 4분의 1, 8분의 1식으로 줄어든다. 연구소별로 한계비용은 MIT 숫자와 차이가 나지만 감축량 증가에 따른 기하급수적 비용 증가에는 이견이 없다. 모든 경제가 그렇듯 배출권도 무역이 해결책이다.
최근 들어 가속화되고 있는 엔저(低) 현상에다 막대한 배출권 비용까지 떠안아야 하는 한국 기업들을 위해서는 배출권 수입이 안되는 현행법을 고쳐 배출권 수입을 50% 이상으로 늘리고 대외 원조와 배출권을 연결시켜 배출권 가격을 낮추면서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는 게 최선이다. 우리는 일본이 그동안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여 만든 일본식 배출권거래제의 장점을 살려 현 제도에 포함시키고 수출 시장에서 일본 기업과 경쟁토록 하면 된다.
백광열 < 연세대 기후금융연구원장 kwangyul.peck@yonsei.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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