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동휘 기자 ]
연금저축 계좌이체 간소화 제도가 지난달 27일부터 시작됐다. 가입한 연금저축 상품이 수익률이나 안정성에서 만족스럽지 않을 때 세제상의 불이익 없이 간편하게 계좌를 옮길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연금저축보험의 낮은 이자에 만족하지 못해 연금저축펀드로 갈아타려는 소비자들은 새로 계좌를 틀 증권사에 한 번만 방문하면 된다.
간편해진 계좌이체
연금저축은 대표적인 개인연금 상품으로 정부가 가입을 장려하기 위해 연간 납입액 400만원에 한해 13.2%(지방소득세 포함)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400만원을 모두 붓는다고 가정하면 연간 52만8000원의 세금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단, 세제 혜택을 얻으려면 중도에 해지하지 않고 장기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 35세에 가입해 20년간 돈을 부은 뒤 55세부터 20년간 매달 연금처럼 수령하는 게 연금저축의 기본 취지다. 만일 계좌를 해지하는 등 연금 외에 다른 방법으로 받고자 한다면 16.5%의 기타소득세가 부과된다.
노후의 윤택한 삶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연금저축 적립금도 킬?늘어나는 추세다. 작년 말 총 적립금은 100조8437억원에 달했다. 이 중 생명·손해보험사가 판매하는 연금저축보험 비중이 76.1%로 가장 높다. 은행의 연금저축신탁과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연금저축펀드 비중은 각각 14.3%, 6.5% 수준이다.
보험사 상품이 많이 팔린 이유는 ‘연금=노후 보험’이란 인식 덕분이다. 원금을 보전해주는 데다 2000년대 초반에 팔린 상품들은 연 3% 이자를 보장해 주는 등 수익과 안전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가능했다. 방카슈랑스 제도 덕분에 은행에서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던 것도 보험 상품이 많이 팔린 배경이다.
연금저축펀드는 보험 상품의 이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증권사가 판매하는 상품이다. 운용은 자산운용사가 맡지만 주식 등 다양한 투자상품에 대한 선별 능력을 갖고 있는 증권사들의 ‘노하우’가 결합돼 있다는 게 장점이다. 최근 1~2년간 설정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2001년에 판매한 상품도 있는데 수익률은 천차만별이다. 연평균 수익률이 10%를 넘는 것에서부터 마이너스를 기록한 펀드도 있다.
연금저축보험과 연금저축펀드의 중간 형태가 연금저축신탁이다. 100% 채권에만 투자하거나 주식을 편입하더라도 비율을 10% 미만으로 한정해 안전성을 높였다. 보험 상품처럼 원금 보장과 예금자 보호가 되는 것도 장점이다.
노후 재테크 설계 꼼꼼히 따져봐야
정부는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2001년 연금저축 계좌이체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동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까진 계좌를 갈아타려면 신·구 가입 금융사를 최소 한 번씩 방문해야 했다. 중소형 보험사나 증권사의 연금저축 상품에 가입한 소비자는 지점이 많지 않아 계좌 이동에 불편을 겪었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이번에 도입된 간소화 제도의 핵심이다. 예컨대 A보험사의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한 소비자가 B증권사의 연금저축펀드로 옮기려면 B사의 지점을 방문해 A사 계좌정보를 알려주기만 하면 새 계좌를 만들 수 있다. 나머지 관련 업무는 금융사끼리 알아서 처리한다.
2000년 말까지 판매된 ‘구(舊)개인연금저축’도 계좌이체 간소화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같은 유형의 상품을 취급하는 금융회사로만 옮길 수 있다. 단 ‘연금’이라는 이름이 붙은 금융상품이라고 해서 모두 포함되는 건 아니다. 우선 퇴직연금(확정급여형·확정기여형·IRP)은 대상이 아니다. 즉시연금 같은 일반 개인연금상품도 해당되지 않는다. 상품명에 개인연금저축·연금저축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지 않더라도 연금저축상품일 수 있으니 가입 금융회사에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계좌이체 전에 가장 먼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자신의 투자 성향을 파악해야 한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고수익을 추구할 것인지, 원금 보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성향인지에 따라 금융회사를 선택해야 한다는 얘기다.
노후를 대비해 재테크 설계를 어떻게 해놓았는지도 감안해야 한다. 사실상 자신의 배당 성향은 이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대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3층 구조로 연금 설계를 잘해 놨다면 고수익을 추구하는 연금저축 상품을 선택할 만하다. 전문가들은 연금저축에 대한 의존도가 클수록 보험, 은행의 원금 보전 상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뗀曹磯?
금리확정형 보험상품은 유지해야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본인에게 어떤 상품이 더 유리한지를 판단하려면 가입 시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반 가입한 확정이자율 상품이라면 현재 판매되고 있는 상품보다 고금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생명보험사들이 2001년께 판매한 금리연동형 상품은 연 3% 이자를 보장하면서 보험사가 제시한 공시이율을 더해 최종 수익률을 결정하는데 가입 시점부터 현재까지 연평균 수익률이 대부분 4%를 웃돈다. 현 기준금리가 연 1.75%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고수익 상품인 셈이다. 채권 위주의 보험사 자산운용 스타일을 감안하더라도 연 3% 이자가 보장된 터라 가입자에게 훨씬 유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계좌이체 간소화 제도를 도입한 금융당국조차 ‘7년 이상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한 소비자들은 계좌이체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할 정도다.
가입 기간이 7년을 넘었다면 수수료 면에서도 연금저축보험을 고수하는 게 낫다. 보험 상품은 연금저축신탁, 연금저축펀드와 수수료 구조가 다르다. 가입 초기엔 매월 납입하는 돈에서 설계사 수당 등의 사업비 명목으로 수수료를 보험사가 미리 떼간다. 그러다 7년 정도 지나면 수수료가 다른 상품에 비해 훨씬 저렴해진다.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한 지 7년 이상이 된 소비자들은 이미 선취 수수료를 낸 만큼 굳이 펀드상품으로 갈아타 수수료를 다시 내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얘기다. 연금저축펀드는 적립액 기준으로 매년 1%가량의 수수료를 뗀다.
계좌이체를 가장 고민할 만한 소비자군은 최근 1~2년에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한 이들일 것이다. 보험사들이 2000년대 초반 판매했던 확정금리형 상품들은 대부분 가입자 모집을 중단한 지 오래다. 저금리 기조가 굳어지면서 연 3% 이자를 보장해주다간 역마진의 위험에 빠질 수 있어서다.
최근에 나온 상품들은 보험사가 제시하는 공시이율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된다. 이 경우 수익률은 보험사가 가입자들로부터 받은 돈을 얼마나 잘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은 채권 투자에만 익숙해왔던 터라 연 1%대 금리 시대엔 낮은 공시이율을 제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계좌이체를 실행에 옮기려면 기존 가입 연금저축의 계좌번호, 비밀번호 등 기본 정보와 가입자의 도장과 주민등록증 등을 준비하면 된다. 신규 가입 금융회사에서 계좌 개설과 동시에 기존 계좌 정보를 알려주면 계좌이체 신청이 가능하다. 이후 기존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계좌이체 의사를 확인해주면 된다. 계좌이체에 따라 기존 계좌는 해지 처리되므로 자금의 일부 이체는 불가능하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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