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적정 음주량은 1주일에 소주 2병 이하라는 지침이 나왔다. 대한가정의학회 알코올연구회가 우리나라 사람의 체질에 맞춰 연구한 결과라고 한다. 알코올 용량으로 따져 생맥주(500mL) 8잔, 막걸리(250mL) 8사발 분량이다.
여태까지는 마땅한 대안이 없어 ‘주당 국제 표준 잔(한 잔은 알코올 14g)으로 14잔(196g)이 적절하다’는 미국 국립보건원 기준을 따랐던 모양이다. 14g짜리 한 잔은 소주 90mL(4분의 1병)이고, 14잔이면 3.5병에 해당한다. 우리는 몸집이 작아 3분의 2 정도인 소주 2병(112g)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이드라인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선 발표기관마다 기준이 제각각이고 수치도 다르다. 몇 년 전 한국건강증진재단이 세계보건기구(WHO)와 의학계 자문을 거쳐 내놓은 저위험 음주 가이드라인은 1주일에 소주 5잔, 맥주 4잔이었다. 여성은 그 절반이었다. 20년 전인 1996년 복지부가 제시한 적정 음주량은 소주 3잔, 맥주 3잔이었고 여성은 그 3분의 2였다.
세계보건기구의 저위험 음주량은 맥주 5.6잔(여성 2.8잔)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를 기준으로 지난해 한국인 평균 음주량이 맥주 6.5잔(여성 4.7잔)이나 된다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 건강측정평가연구소도 술 때문에 약 11.1개월의 건강수명이 단축된다며 잔뜩 겁을 줬다. 영국 왕립공중보건학회는 와인 한 잔 열량이 파운드케이크 한 조각과 같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런 숫자들이 ‘어리석은 공포’를 조장할 뿐이라는 지적도 많다. 과체중일수록 사망률이 높다는 통념은 2013년 미국 국가보건통계청의 조사 결과 뒤집어졌다. 과체중인 사람의 사망 확률이 되레 6% 낮다는 것이다. 노스웨스턴대 연구팀도 과체중 당뇨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오래 살고 사망률이 절반 이하였다고 보고했다. ‘비만의 역설’이다. 고혈압 기준을 1900년대 초 ‘160, 100 이상’에서 1974년 ‘140, 90’으로 낮춘 결과 환자가 3배 늘었던 사례도 비슷하다.
물론 지나친 음주는 나쁘다. 그러나 뭐든지 계량화하려는 ‘숫자 인간’들의 사고 방식도 별로 좋아보이진 않는다. 그러면 술의 정신적 영향은 어떻게 수치화할 것인가. 영국에 철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성명서가 생각난다. 당시 영국의사협회는 ‘마차에 비해 철도는 너무 빨라서 구토나 메스꺼움, 정신병까지 유발할 수 있으니 가능하면 기차를 타지 않기 바란다’고 전 국민에게 권고(?)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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