換헤지 능력 없는 中企 더 흔들려
통화전쟁 방어막 튼튼히 세워야"
유지수 < 국민대 총장·경영학 jisoo@kookmin.ac.kr >
운동경기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억울해지는 때가 있다. 상대팀이 반칙을 했는데 심판이 이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순간이다. 축구에서 페널티킥을 얻을 수 있는 반칙에도 심판이 휘슬을 안 불어주면 정말 속이 상한다. 기업 간 경쟁에서도 이런 억울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요즘 기업인을 만나 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억울해한다. 경영을 잘못했거나 제품을 잘 만들지 못한 것도 아닌데 글로벌 시장에서 판판이 깨지고 있다는 하소연들이다. 더 답답한 것은 한국은 경제정책의 정도를 걸어왔는데 변칙적 경제정책을 편 국가들 때문에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의 주범은 환율이다. 유럽과 일본은 자국 경제를 살린다며 마구잡이로 돈을 풀어대고 있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대규모 양적 완화를 했던 미국의 변칙 플레이를 따라 하는 것이다. 한국 기업이 이 글로벌 양적 완화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3년 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돈을 풀기 시작했을 때 일본 경제는 결국 무너질 것이라는 예측 ?우세했다. 엔화가치가 떨어지면 에너지 수입이 많은 일본은 부메랑을 맞을 수밖에 없고 결국 국가재정이 파탄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운이 좋은 것 같다. 국제 석유가격이 이렇게까지 떨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엔화가치가 크게 떨어졌는데도 에너지 가격이 급격히 하락해 무역수지는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 3월 일본은 2012년 6월 이후 처음으로 2293억엔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이 덕분에 일본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보다 우위를 점하게 됐다. 엔저로 인해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원·엔 환율은 100엔당 898원 선으로 7년2개월 만에 800원대에 진입했다. 한 투자증권회사는 원·엔 환율이 이런 추세라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동결했는데 일본은행이 추가로 대규모 양적 완화에 나선다면 2분기 원·엔 환율은 835원으로, 연말에는 785원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렇게 되면 한국 수출 기업의 수익성은 더 악화돼 코스피지수까지 2010선으로 하락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렇듯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은 궁지에 몰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조선업은 붕괴할지도 모른다. 석유화학산업이 위태롭고 철강산업도 마찬가지다. 가전, 통신, 자동차 할 것 없이 수출주도형 제조업 전체가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
주요 기업들의 매출과 이익 모두 동반 추락하고 있다. 삼성전자만 해도 1분기 영업이익이 8000억원 정도 줄었다. 현대중공업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6% 떨어졌다.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공급사슬에 속한 중소기업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요즘은 중소기업들도 상당히 글로벌 ?탉?외국에 공장이 많다고는 하지만 환율 영향에서 비켜서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부품업체는 국내에서 상당량의 부품을 생산해 현지 공장에 보내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부품업체는 대략 50% 정도 국내에서 부품을 생산해 외국 공장으로 실어 나른다. 환율 때문에 해외 생산 단가가 높아지는 구조인 것이다. 그나마 대기업은 환(換)위험을 헤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대부분의 부품업체는 환위험에 무방비 상태다.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업의 이익이 줄면 세수(稅收)도 줄게 돼 있다. 지금처럼 복지지출 등으로 인한 재정지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세수마저 줄어들면 재정은 금세 악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근자에는 기업을 대변해주는 부처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기업 없이는 경제도 국가도 없다는 것이다. 기업을 살려야 한다. 기업의 애로를 해소해주는 정부여야 한다. 전 세계적 환율전쟁의 유탄을 맞아 억울한 기업이 생기지 않도록 튼튼한 방어막을 세우고, 기업들이 마음 놓고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유지수 < 국민대 총장·경영학 jisoo@kookmin.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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