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맵고 눈물 나도…한꺼풀씩 벗겨나가기

입력 2015-05-07 21:00  

한경·교보문고 선정 대학생 권장도서 - 양파 껍질을 벗기며

권터 그라스 지음 / 장희창·안장혁 옮김 / 민음사 / 576쪽 / 2만5000원



[ 박상익 기자 ] 스웨덴 한림원이 선정한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사진)였다. 그라스는 1959년 발표한 소설 《양철북》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작가가 됐다. 한림원은 그의 작품에 대해 “인간들이 떨쳐버리고 싶었던 거짓말, 희생자와 패자 같은 잊힌 역사의 얼굴을 블랙 유머 가득한 동화로 잘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2006년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쓴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를 출간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세계대전 당시 징집된 것이 아니라 나치 친위대(SS)에 입대했다”고 고백해 독일은 물론 전 세계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나치 복무 경력이 그의 인생 전부는 아니다. 책 속에는 독일의 예술가이자 비판적 지성으로 활동한 그의 삶이 녹아 있다.

그라스는 10대 시절 무장 친위대에 들어가 활동한 경력이 범죄에 가담한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때 “왜?”라고 묻지 않았음을 고통스러워한다. 그는 전후 독일 사회의 과거 청산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따지며 “아픔을 딛고 양파 껍질을 벗겨나가자”고 주장한다.

자서전 후반부에는 조각가가 되고 싶었던 그라스의 예술적 재능이 빛나는 시기가 담겨 있다.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창작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았고, 그 집념은 양철북을 낳았다. 예술적 재능을 일깨워준 어머니, 경제적으로 무책임했던 아버지, 파란만장한 삶을 산 여동생에 대한 감정도 솔직하게 말한다.

매운 양파 껍질을 눈물을 훔치며 벗기는 일은 쉽지 않다. 어찌 보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양파 껍질 벗기기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는 제대로 된 기록도 남지 않은 자신의 젊은 시절에 맞섰다. 뒤늦은 고백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반면 그가 과거사를 정리하고 극복하는 차원에서 과오를 인정한 것은 의미 있다고 평가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는 이런 시선들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묵묵히 작품을 썼다. 부끄러운 과거는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사람의 품격이 달라진다. 곡절 많은 생을 마감한 작가의 삶은 진정한 예술혼과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인생을 설계할 시기에 있는 대학생들이 일독할 만하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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