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양질의 일자리 줄이는 서민정책의 역설…"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입력 2015-05-08 16:51  

◆서민정책과 시장의 복수

정부와 국회가 저소득층 등 경제적 약자를 돕겠다며 내놓은 최저임금제, 비정규직보호법, 파견근로자보호법 등 이른바 ‘서민 지원 3대 정책’이 도리어 서민들로부터 양질의 일자리 34만개를 빼앗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대중인기영합정책으로 ‘일자리 불임(不妊)’을 초래한 서민정책의 역설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 4월29일 한국경제신문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는 말이 있다.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이 실상 아주 나쁜 결과를 낳는 경우를 빗댄 말이다. 경제에서는 정의로워 보이는 정책이 현실에선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일이 자주 생긴다. 모든 결정이나 선택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대가없이 뭘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바보’ 아니면 ‘사기꾼(선동가)’이다. 그래서 특히나 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정책은 ‘뜨거운 가슴’으로만 해서는 안되고 ‘차가운 머리’가 뒷받침해야 한다. 이게 국회의원들이 이념이나 정의(正義)라는 깃발아래서 나箚姸┸?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 관련 법률이나 규칙을 마구잡이로 만들면 안되는 이유다.

비정규직을 양산한 비정규직법

선의의 정책들이 현실에선 큰 부작용을 초래하는 정책 몇가지를 살펴보자. 비정규직보호법, 파견근로자보호법, 최저임금제법 등은 모두 서민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국회에서 만들어진 법률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오히려 서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사례가 많다.

2008년 국회에서 기간제근로자보호법이 만들어졌다. 비정규직(기간제근로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의 골자는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은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법 제정 취지대로라면 기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들은 2년후면 정규직이 돼야 한다. 고용안정성을 높이자는 법이지만 시장에선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대신 계약을 해지해 해고하는 기업들이 훨씬 많아진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 근로자와 2~6개월씩 초단기로 ‘쪼개기 계약’을 맺는 기업도 생겼다. 기업들로선 줄 수 있는 인건비 총액은 일정한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서는 경영이 힘들다.

이 법이 시행되기전 2007년 반복갱신이나 무기계약, 정규직 전환 등으로 고용보장이 된 비율이 54.7%였다. 2002~2007년엔 연평균 47.9%를 기록했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 2008~2014년 전환비율은 연평균 38.7%로 낮아졌다. 나머지 비율은 해고된 것이다.

서민 일자리 줄이는 최저임금

기업들이 주는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한 최저임금제도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 1988년 만들어진 최저임금법은 저소득층을 돕기 위한다는 취지였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심의·의결한 최저임금액을 고용노동부 장관이 결정한다. 1988년 시간당 487원이던 최저임금은 올해 5580원으로 올랐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이 역설적으로 정규직 일자리를 없애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기업은 최저임금 이상을 주기 때문에 최저임금제와 별 상관이 없다. 문제는 최저임금도 주지 못하는 수많은 영세기업이나 자영업자다. 전체 임금근로자 중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근로자 비중은 2005년 10.1%에서 지난해 11.1%로 되레 늘었다. 특히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15~29세 청년층은 2005년 10.5%에서 지난해 15.5%로 크게 증가했다.

최저임금이 매년 올라가면서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영세기업들은 기존 정규직 일자리를 없애고 단기 근로자 등으로 대체하고 있다. 힘들게 살아가는 자영업자들도 최저임금을 주지 못해 아예 ‘알바’ 쓰는 걸 포기하게 된다. 급속한 인상이 일자리만 줄이는 셈이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1% 늘어나면 시간당 임금이 하위 5%인 저소득 근로자의 신규 채용은 6.6% 줄어든다.

최근 불거진 아파트 경비원의 최저임금제 적용이 대표적 사례다. 아파트 경비원은 최저임금법 제정 당시 노동 강도가 덜한 ‘감시·단속직’으로 분류돼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않았다. 2007년 법이 개정돼 최저임금 적용대상이 됐지만 갑자기 임금이 오르면 대량해고 사태가 일어날 것을 감안해 유예기간을 뒀다.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금액을 올려 올해부터 최저임금 100%를 적용받게 됐다. 이렇게 경비원들의 최저임금이 오르니 경비원 대신 무인경비를 도입하는 아파트 단지가 늘었다. 최저임금이 오르는 동안 전국 경비원 숫자는 4만여명 줄어들었다.

고용 불안 부르는 파견근로자보호법

파견근로자보호법은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성과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1998년 제정됐다. 하지만 고용안정 향상이란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법 시행 이후 파견근로자의 고용은 더 불안해졌다. 파견기간 6개월 미만 근로자의 비중은 2001년 34%에서 2013년 59.1%로 늘어났다.

파견근로자는 파견업체(파견사업주)가 근로자들을 고용,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인력을 필요로 하는 업체(사용사업주)에보내 일하게 하는 근로자다. 사용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일하고, 월급은 파견업체에서 받는다. 우리나라는 법에 파견근로자를 쓸 수 있는 업종을 32개로 한정하고 있다. 컴퓨터 전문가, 특허 전문가, 통·번역가 등 전문직도 포함돼 있지만 대부분은 주차장 관리원, 건물청소 종사자, 배달·운반 등 단순 서비스 업종이다. 기업 입장에선 파견이란 제도를 활용할 성질의 업무가 별로 없는 셈이다. 파견근로자를 쓸 수 있는 기간도 최대 2년이다.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대우 등을 개선하겠다며 제정한 파견근로자보호법이 파견허용 업종과 근로기간을 제한하는 바람에 기업들은 파견근로를 줄이는 대신 초단기 계약직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으로 바꿨다.

노동의 유연안전성 높여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들 ‘서민 지원 3대 정책’은 오히려 서민들로부터 양질의 일자리 34만개를 빼앗은 것으로 집계됐다. 비정규직보호법으로 2009년 이후 작년까지 10만341개의 일자리가 계약기간 2년 미만의 불안정 일자리로 전락했다.2005년 이후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최저임금도 못 받는 불안정한 일자리는 16만8000여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파견근로자 일자리도 최근 10년간 7만2000여개 줄었다. 최저임금제, 비정규직보호법, 파견근로자보호법 외에도 대기업의 시장진입을 제한하는 중소기업적합업종과 대형마트 의무휴업 등 ‘약자보호정책’으로 인해 감소한 일자리는 모두 40만개를 넘을 것으로 추정됐다.

선한 의도로 포장된 이들 ‘서민정책’의 공통점은 시장원리를 무시한 채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에 기대어 급조됐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선심쓰기 정책인 것이다. 법과 정부의 시장 규제나 가격 규제는 항상 시장의 복수를 낳는다(‘Market strikes back!’). 서민정책은 시장개입이나 가격규제를 통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이 핵심이 돼야 한다. 기업들이 해고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역설적으로 일자리도 는다. 통일후 엄청난 후유증을 겪었던 독일이 유럽의 맹주로 부활할 수 있었던 건 슈뢰더 정부의 노동개혁 덕분이다. 노동시장이 유연성을 높이는 게 지금 한국 경제의 최대 과제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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