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掌篇)2 - 김종삼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십 전(錢) 균일상(均一床)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십 전(錢)짜리 두 개를 보였다
부모님을 생각하는 소녀의 모습이 가정의 달을 맞아 김 총장의 가슴에 와닿았나보네요. 김 총장은 시를 읊은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가슴이 찡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가난은 죄악도 아니고 사회적 차별 대상은 더더욱 아닙니다. 편견과 오해 무지와 이해관계 등으로 차별받거나 무시되는 것이 어디 이것 뿐이겠습니까만,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저렇듯 당당하고 의연하게 할 일을 다하고 있는 소녀의 기개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12년에는 이진성 당시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의 모두발언에서 이 시를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후보자는 당시 시를 모두 읽은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흔히 사람을 출신이나 지위, 행색이나 장애 유무와 같은 겉모습으로 선입견을 가지고 속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 속의 소녀와 같이 사회의 밑바닥에서 고달픈 삶을 살지만 의연함을 잃지 않는 많은 국민이 계십니다. 저는 그들이 내미시는 손을 따뜻하게 잡고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헌법재판관이 되고자 다짐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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