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구 국토교통부 제2차관은 11일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출장을 떠났다. 코레일과 한국철도시설공단 등 철도 관련 공공기관 관계자들도 함께 갔다. 현대로템이 두 국가에서 13조2000억원 규모의 고속철도 차량 납품 계약을 따낼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고속철 수출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과 중국에선 일찌감치 정부와 기업이 함께 움직였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외국에 나가 중국 고속철을 팔기 위해 홍보할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힘이 솟아난다”며 태국 영국 러시아 등에서 고속철 수주를 도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해외 정상을 만난 자리에선 어김없이 일본 고속철 홍보대사로 활약했다. 중국이 세계 고속철 시장 1위에 오르고 일본이 세계 2위를 달리는 데는 이런 지원이 큰 힘이 됐다. 반면 한국은 중국보다 4년 이른 2004년 고속철을 개발하고도 단 한 건의 고속철을 수출하지 못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가 고속철 수출에 앞장서려는 것은 다행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정부의 핵심 역할은 따로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루빨리 국제 표준으로 통하는 고속철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다수 국가들은 전동차 칸마다 엔진이나 전기모터 같은 동력원이 있는 ‘동력 분산식’ 열차를 선호하는데 한국 정부는 여전히 맨 앞칸과 뒤칸의 2개 전동차에만 동력원을 장착한 ‘동력 집중식’ 고속철만 고집하고 있다.
현대로템이 2009년 2월 100% 국내 기술로 동력 분산식 열차를 개발했지만 국내에 깔지 못해 수출 기록은 전무하다. 안전이 최우선인 고속철을 국내에서 검증도 받지 않은 채 수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독일 지멘스나 프랑스 알스톰, 일본 히타치도 모두 자국에서 수년간 동력 분산식 고속철을 운행한 뒤 수출했다.
국토부는 뒤늦게 작년 9월 동력 분산식 고속철을 도입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발주 계획은 깜깜무소식이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정부가 동력 분산식을 채택하면 한국의 고속철 수출은 또다시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은 데도 말이다. 출장을 가기 전에 국토부가 할 일은 따로 있다는 사실을 국토부만 모르는 것 같다.
정인설 산업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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