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국제분업체계 재편할 TPP서 소외되면 안돼

입력 2015-05-11 21:02  

TPP가입의 得과 失

아베 日총리 訪美로 TPP 급물살…연내 타결 전망
12개 참가국 총 GDP는 세계 경제의 39% '메가 FTA'
경제적 이득 외에 안보를 위해서라도 조기 가입을

"TPP 가입 자체를 하나의 대외 협상 카드로
적절하게 활용하는 정부의 지혜도 절실하다"

허윤 <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최근 미국 방문을 계기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양국 정상은 TPP 조기 타결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하면서 12개국 협상대표단을 향해 조속한 협상 타결을 주문하고 나섰다.

12개국 각료회의는 이달 하순에 열릴 예정이다. 협상의 걸림돌이던 미·일 간 쌀과 자동차 문제도 큰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상반기, 늦어도 연내 타결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미국 의회의 행정부에 대한 무역촉진권한(TPA) 부여 문제도 상·하원 해당 상임위원회를 통과했고 본회의 표결 전망도 밝아 향후 TPP 협상 가도에 ‘미국발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TPP는 일본 멕시코 베트남 등 3대륙 12개국이 미국의 주도 아래 상품, 서비스·투자, 노동환경, 지식재산권 등 29개 분야에서 관세·비관세 장벽 철폐를 목표로 추진하는 ‘메가(광역)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참가국들의 총 국내총생산(GDP)은 28조달러로 세계 경제의 39%, 무역 규모는 세계 무역의 약 26%인 9조5000억달러에 이른다.

한국의 TPP 참여 문제는 앞으로 우리 내부에서 본격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지만 상당한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농·축산업과 대일(對日) 비교열위 산업의 추가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TPP 가입을 둘러싼 우리 사회 일부 주장과 논리의 타당성을 되짚어보자.

첫째, 한국은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TPP 참여국 대부분과 이미 FTA를 맺은 상태여서 TPP에 가입해도 ‘별로 먹을 게 없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시각은 TPP와 같은 메가 FTA 특성을 간과한 논리로 보인다. 왜냐하면 기존 양자 FTA가 양국을 연결하는 단선적 특혜관계를 의미한다면 메가 FTA는 모든 회원국을 포함하는 다자적 특혜망으로의 질적 전환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효과 면에서 양자 FTA의 단순한 합(合)과는 차원이 다르다.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 참여해야

특히 원산지 누적에 따라 다른 회원국에서 생산한 각종 재료 구입비나 노무비, 제조 경비까지도 국내산 구매·공정비용으로 상호 인정함으로써 글로벌 가치사슬의 확대와 국제 분업체계의 급속한 재편을 초래할 것이다. 전체 수출에서 중간재 비중이 70%에 이르는 한국 경제가 이 같은 변화의 물결에서 소외된다면 메가 FTA 시대 글로벌 공급망 확충에 따른 참여 기회는 제한되고, 그나마 먹고 있던 밥그릇마저 TPP 회원국에 빼앗길지도 모른다. 조기 가입이 필요한 이유다.

둘째, 통상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니까 TPP를 둘러싼 정치·외교·안보적인 요소들은 걷어내고 돈 문제에만 집중해 최대한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실리추구론’이다. 검증 모형과 데이터를 이용해 TPP 가입이 우리 소득과 수출, 일자리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이해득실을 따져 TPP 가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해가 되고 일리도 있다.

하지만 많은 FTA가 그렇듯이 TPP 가입 효과는 경제 체제의 질적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비관세 장벽의 철폐, 국영기업의 개혁과 서비스업 개방 등은 그 효과가 계량적으로 잘 잡히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TPP에서 비(非)경제적 요인들을 제거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방미 중 아베 총리가 “TPP는 경제적 이익을 넘어 안보에 관한 것으로 장기적으로 그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언급한 것은 TPP를 바라보는 미·일의 공통된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TPP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각종 데이터 분석의 결과는 제한된 영역에서 발생하는 최소한의 효과 정도로 해석돼야 한다.

국가안보와도 밀접한 사안

셋째, TPP의 외교·안보적 성격을 논할 때 중국을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고 북한과 연계해 보는 우리 특유의 시각이다. TPP 가입이 ‘중국의 군사적 부상’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헤징 전략’이 될지에 대한 평가는 묻어두고 일단 북한의 급변 상황을 가정한 뒤 중국이 어떻게 나올까부터 걱정하는 사유방식이다.

이?미·일이 중국 그 자체를 심각한 안보 위협 요인으로 인식하고 군사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 견제망을 공고히 하는 움직임과는 거리가 있다. 한반도에서 북핵의 위협은 결코 과소 평가할 수 없지만 이웃한 중국의 위협적인 군비 증강마저 ‘북한의 종속 변수’로 생각하는 우리의 안일한 대중 안보의식이 놀랍다.

이처럼 TPP 가입 문제는 경제와 안보라는 요소가 공히 내포된 주요한 정책 사안이다. TPP 가입 여부 혹은 시기를 놓고 산·관·학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큰 틀에서 TPP 가입 자체를 대외 협상 카드로 적절하게 활용할 정부의 지혜도 절실하다. 왜냐하면 이명박 정부 말기에 서둘러 시작한 한·중 FTA나 최근 논란이 됐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문제 등도 하나같이 정부의 전략적 접근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가 미래 비전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외교·안보·산업·통상이라는 다양한 정책 수단을 협상 카드로 활용해 힘든 결정을 내린다. 한 나라가 지향하는 명확한 비전과 철학 없이는 정책의 우선순위, 의사결정의 타이밍, 상대방 설득을 위한 카드, 협상의 목표 등을 제대로 정하기 어렵다. 일이 터져서야 우왕좌왕하고, 상대에게 속이 훤히 보이는 주판알을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다가는 ‘실리’도 ‘명분’도, 그나마 쌓아놓은 ‘신뢰’도 몽땅 날리기 십상이다.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방안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의 꿈인 ‘글로벌 패권국가 실현’이라는 미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주변국을 염두에 둔 다양한 포섭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미·일 동맹에 지극히 충실한 보수정치인 아베 총리는 미국과의 신(新)밀월관계 조성을 통해 한편으로는 미국을 지원하고 필요한 영역에서 미국의 강한 지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가치를 반영한 TPP 타결을 위해 공화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해 교차투표를 유도하고 있다.

‘한국의 꿈’은 무엇인가. 사실 TPP에 대한 정확한 해법은 정권이 바뀌어도 변할 수 없는 우리의 가치와 미래의 지향점에 맞닿아 있다. 지금 우리가 ‘비전 부재’ ‘전략 부재’ ‘전술 부재’라는 ‘삼부재(三不在)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허윤 <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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