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국정치의 역설

입력 2015-05-12 20:43  

사람은 많은데 쓸만한 인재는 부족
양심·덕망 갖춘 이들이 크는 생태계
우리가 이뤄야할 궁극의 정치개혁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joonh@snu.ac.kr >



세월호 참사 후 대통령은 ‘국가 개조’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를 잊을 겨를도 없이 ‘정치 개혁’이 다시 화두다. ‘성완종 게이트’에 즈음한 대통령의 다짐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갑갑하고 진부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치 개혁은 해묵은, 아니 고질적인 과제였다. 정치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다시 또 ‘한철 캠페인’으로 끝나는 건 아닐까.

성완종 게이트는 정치와 돈의 문제를 새삼스럽게 부각시켰다. 정치 개혁의 핵심은 그러나 사람의 문제다. 물론 돈의 힘은 정치적 영향력을 좌우할 만큼 크다. 관건은 그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느냐에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에 의존한다. 하지만 다수의 지배가 깨끗하고 올바른 정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훌륭한 인재들이 적자생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플라톤이 말한 철인(哲人)정치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 새恝?얘기가 아니다. 다수의 지배와 선출된 지도자의 품성은 별개다. 문제는 정치에 양심적이고 덕망 있는 유능한 인재들의 유입을 막는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정치는 만인에게 개방돼 있다고 한다. 누구나 정치인이 될 수 있고 의원 뱃지를 달 수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공권력의 상징인 검찰과 경찰의 고위직을 거친 인사들이 지향하는 곳이 여의도인 것을. 여의도에서 웬만큼 자리를 잡으면 다음에는 대권 즉, 용(龍) 꿈을 꾼다. 그렇게 용들이 많은데 마땅한 국무총리 후보감을 고르기가 난감하다. 한국 정치의 역설이다.

두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하나는 정치에 보이지 않는 진입 장벽이 있어 훌륭한 인재들의 진입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학력이나 경력만으로 따지면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인재들이 몰려 있는 곳이 대한민국 국회인데 무슨 소린가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학력이나 경력이 나랏일을 맡길 만한 훌륭한 정치인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유능한 인재는 많아도 양심과 덕망을 함께 갖춘 경우는 드물다. 문제는 정치 입문이 양심과 덕망보다는 야망과 힘, 수완으로 결정된다는 데 있다. 물론 그런 선량을 무슨 인성 테스트나 리더십 심사로 뽑을 수도 없으니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또 하나의 가설은 훌륭한 인재들도 일단 정치권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렇게 타락해 버리거나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신망이 높았던 인사들이 정치적 동원에 휩쓸리거나 이런저런 유착에 빠져들고 만 민망한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문제는 그 정치라는 이름의 생태계에 있을 것이다. 양심과 덕망을 갖춘 인재들이 살아남고 커 갈 수 있는 구조와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게 정치 개혁의 핵심인 까닭이다.

결국 정치 개혁은 사람을 바꾸는 데서 시작해 바뀐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와 조건을 갖춘 생태계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게 가능할까. 정치인의 현재는 누적된 과거일 텐데, 그 모든 누적된 과거를 놔두고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사람을 바꾼다는데, 누가 누구를 어떻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개혁은 할수록 좋다. 더 강력하게 더 자주, 아니 상시 개혁체제로 가야 한다. 정치 개혁도 피로 증상을 겪는다. 정치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리라 믿는 사람이 드문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몇 바퀴를 돌았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푸닥거리가 끝나면 결국 ‘그 밥에 그 나물’로 달라질 게 있겠느냐는 것이 시장의 정서다. 개혁의 피로는 절망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반(反)개혁, 현실 야합, 혼돈의 늪으로 우리를 이끈다.

성완종 게이트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사법처리가 필요하다. 그것만으로 정치 개혁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 개혁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이번에도 또 어물쩍 넘어간다는 비난을 면하려면 무슨 개혁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이정표를 만들어 임기 동안 어디까지 어떻게 갈 것인지도 약속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가 할 일이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joonh@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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