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말 철도노조 파업 때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릴레이가 벌어졌다. 하지만 매표원도 연봉 6300만원인 귀족노조의 ‘이대로 살자’식 불법 파업을 88만원 세대가 옹호한 셈이 됐다. 이를 본 어떤 네티즌의 촌평이 걸작이다. “흑인이 백인 인권을 걱정해 주네.”
그때보다 청년들 처지는 전혀 나아진 게 없다. 최악의 취업난에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 5포(3포+내 집 마련·인간관계 포기)를 넘어 꿈과 희망도 포기한 7포 세대까지 등장했다. 청년층 체감 실업률은 20%를 웃돈다. 스펙은 고급인데 급여는 저렴한 ‘이케아족’, 서른 넘어서도 부모 신세 지는 ‘빨대족’ 등 신조어만 늘고 있다.
‘7포 세대’에 연금 바가지까지
취업난의 근본 원인은 저성장에 있다. 경제가 크지 못하는데 일자리 묘책이 있을 리 없다. 20대 설문조사에선 절반 이상이 경쟁적 사회구조를 꼽았다. 누가 청년 일자리를 병목으로 만들고 있을까. 바로 ‘청년 일자리 5적(敵)’들이다. 국회의원, 이익집단, 노동귀족, 얼치기 멘토, 그리고 정부.
일자리 66만개를 만들 것이란 법안들은 국회에서 2년 넘게 썩고 있다. 반면에 의원들이 만든 법은 누군가의 특권을 보장하거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막아 일자리를 좀먹는 것들 투성이다. 특정 의원과 OO협회 간 유착이 의심스러운 사례도 부지기수다. 법과 소시지 만드는 과정은 안 보는 게 낫다는 서양 격언이 무릎을 치게 한다.
‘표(票)벌레’에게 20대는 계륵과 같다. 숫자가 적고 투표율도 낮아서다. 반면 공무원과 가족 400만표는 절대 무시 못한다. 그러니 공무원연금은 개혁하는 척하며 애꿎은 국민연금을 끌고 들어간 것이다.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2060년은 먼 미래가 아니다. 지금 스무 살 청년은 죽어라 연금보험료를 내도 65세(2060년)가 되면 한 푼도 못 받는다. 여야 대표가 자랑한 사회적 대타협은 ‘세대 간 도적질’이 맞다.
노동계는 청년들 편일까. 노동계 핵심은 더 이상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이 아니다.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교원 병원 은행 등의 먹고살 만한 노조들이다. 10%도 안 되는 노동귀족들이 약자 코스프레를 하며 거리로 나설수록 청년 취업문은 닫혀만 간다.
“자식들 이민 보내고 싶다”
전문직, 직능단체 등 이익집단들의 강고한 카르텔은 중세 길드와 다를 게 없다. 경쟁자를 늘리는 제도·정책은 로비로 막고, 안 되면 ‘민영화, 공공성, 국민건강’ 등의 프레임으로 엮어 격렬히 저항한다. 자신들만의 일자리 만리장성을 쌓는 것이다.
얼치기 멘토들은 현란한 말발, 글발로 청년들을 황폐하게 만든다. 취업난은 오로지 사회 탓, 자본 탓이며 ‘깨시민’이 되라고 종용한다. 그런데 대개 말 따로 행동 따로다.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면서 자기 자식은 특목고, 유학 코스를 밟는다. 게을러야 일자리가 는다던 ‘거리의 철학자’는 한 달에 한 권씩 출간한 초능력자였다.
정부도 공범이다. 경제민주화란 미명 아래 성공과 혁신을 규제하고 뒤처진 것을 보호할수록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사라진다. 게다가 통상임금 확대, 정년연장 등으로 지난 5년간 인건비는 50%나 올랐다는데 신규 채용을 늘릴 간 큰 기업이 있을까 싶다.
일자리 5적은 시도 때도 없이 청년들을 위하는 척한다. 하지만 그들의 기득권이 깨져야 청년 일자리가 생긴다. 연금 논란을 보면서 “자식들은 이민 보내고 싶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신록의 계절인데도 풀 죽은 젊은이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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