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수북한 고봉밥과 함께 정 쌓아온 우리 문화

입력 2015-05-14 21:44  

밥의 인문학

정혜경 지음 / 따비 / 360쪽 / 1만6000원



[ 박상익 기자 ]
예전부터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할 정도로 밥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였다. “밥은 먹었느냐”고 안부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 보기 어렵다. ‘제 밥그릇은 제가 지고 다닌다’ ‘남의 밥을 먹어봐야 부모 은덕을 안다’ ‘남의 밥은 맵고도 짜다’ 등의 속담은 한국인의 삶이 밥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됐는지 알려주는 방증이다. 하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고 쌀 이외에 주식으로 삼을 만한 식재료가 많아지면서 쌀 소비량은 계속 줄고 있다. 쌀밥이 비만과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밥의 인문학》은 한국인에게 밥은 무엇인지 탐구하고, 밥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측면을 살펴본다.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인 저자는 밥이 지닌 영양학적 가치를 재조명하면서 한국인에게 외면당하는 밥을 다시 불러낸다. 저자는 먼저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에 한반도 사람들이 쌀을 어떻게 먹었는지부터 되돌아본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서민들이 밥을 배불리 먹은 적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굶주린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마다 엄청난 양의 밥을 먹었다. 저자는 이런 결핍의 상황이 역설적이게도 나눔의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한다. 넉넉히 먹을 수 없기에 나누어 먹는 문화가 생긴 것이다. 오늘날에도 가족은 식구(食口), 즉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밥은 사람의 일생에 깊이 관여한다. 어머니가 아기를 낳으면 흰 쌀밥에 미역국을 먹는다. 아기가 자라면서 생일을 맞을 때마다 쌀밥과 미역국이 빠지지 않는다. 세상을 떠난 사람의 입 속에 버드나무 숟가락으로 쌀을 넣는 풍습엔 망자가 저승에서도 굶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다. 문학에서도 밥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소설 토지 혼불 등에선 근대의 밥 먹는 풍경과 여성의 삶을 엿볼 수 있다.

현대 대중문화에서도 식사 장면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드라마 속에서 부유한 사람은 일식이나 양식을 먹고 서민은 주로 한식을 먹는다. 저자는 “이런 장면들은 무의식중에 한식이 열등하다고 생각하게 한다”며 “반대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한식을 차려내면 시청자들은 ‘한식은 어렵고 번거로운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드라마에서 항상 여성이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탄수화물을 적게 먹고 채소와 고기 섭취를 강조하는 일명 ‘구석기 다이어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쌀이 한반도에 비교적 늦게 들어온 곡식임에도 주식으로 선택된 이유는 맛과 영양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쌀이 탄수화물이란 이유로 비만과 성인병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분식이나 군것질을 자주 하기 때문에 각종 성인병이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쌀 전분은 밀 전분보다 소화 흡수가 느려 급격한 혈당 상승을 막기 때문에 당뇨병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쌀이 완전무결한 식품은 아니기에 잡곡을 섞어 밥을 짓고 다양한 반찬을 먹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젊은이들이 우리 민족의 핵심인 밥에 흥미를 갖지 않고 외면하는 현실이 큰 문제”라며 “이대로 간다면 밥이 우리 식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인간의 정체성과 식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쌀과 밥이 지닌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식사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생각하게 한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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