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원단업체 벤텍스 고경찬 사장 "기능성 섬유원단 히든챔피언 도전…나이키·아디다스도 우리 고객"

입력 2015-05-15 07:00  

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연구개발 전문기업에서 포천 공장 준공으로
생산까지 일관화체제 갖춰

빨리 마르는 섬유 등 개발…특허 등록·출원 100건 넘어

염색업체 근로자 자녀에 장학금 지원…섬유인 양성



[ 김낙훈 기자 ] 벤텍스는 기능성 원단을 만드는 기업이다. 다양한 섬유원단을 개발해 글로벌기업에 납품하고 있다. 주요 거래처는 나이키 등 글로벌 기업이다. 종업원 60명의 중소기업이 어떻게 이런 거대기업의 문을 열 수 있었을까.


서울 잠실에 본사를 둔 벤텍스는 ‘빨리 마르는 섬유’ ‘광발열섬유’ 등을 개발해 수출하는 업체다. 조그마한 중소기업이지만 특허 등록 및 출원 건수가 100건이 넘는다. 이 회사 거래처는 나이키 아디다스 펄이즈미 미즈노 아식스 등 글로벌기업들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벤텍스를 창업한 고경찬 사장(55)에게 올해는 세 가지 면에서 전환점이 되는 해다.

첫째, 포천공장 준공이다. 그동안 이 회사는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생산은 협력업체에 맡겼으나 최근 포천에 공장을 짓고 주요 원료를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다. 8500㎡의 대熾?건립된 3개 공장(연건평 3300㎡)에서 기능성 원단의 원료를 만든다. 고 사장은 “이 공장에선 속건섬유 체열반사소재 광발열섬유 및 광발열충전재 등을 자체 생산하거나 협력업체를 입주시켜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장 준공식은 13일 열렸다.

둘째, 섬유인력 양성을 위한 장학제도 개편이다. 그는 섬유산업 발전을 위해선 지속적인 인력 양성이 중요하다고 보고 지난 1월 섬유산업연합회에 장학기금을 추가 출연하기로 약속했다. 매년 1000만원씩 10년간 1억원을 내기로 했다. 2012년 1월부터 섬산련 장학재단 내 ‘벤텍스 장학회’(매년 3000만원씩 총 3억원)를 운영하고 있는데 1억원을 추가함에 따라 4억원의 장학금을 출연하게 됐다.

대개의 장학금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지급하지만 벤텍스 장학금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우선 지원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동안 주로 섬유공학과 재학생 등 대학생을 대상으로 줬지만 이번에 추가 출연한 장학금은 특성화고 재학생과 염색·편직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자의 자녀들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이는 고 사장의 경험과 철학에 따른 것이다.

제주도 출신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성균관대 섬유공학과 재학 중 장사를 해서 학자금을 마련했다. 방학 때마다 부산에서 장사를 했다. 지인이 거의 없어 오히려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인 부전시장에서 물건을 떼어다 양말 밤 김 핸드백 등을 팔았다. 때로는 울산이나 창원 등 장거리 노선을 뛰는 시외버스에 올라 물건을 팔기도 했다. 이때 친구를 만날까봐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이런 그의 경험이 가난한 학생을 돕는 일을 시작하게 만든 것이다.

셋째, 피부 연구를 통한 기능성 원단 연구개발 강화다. 고 사장은 모교인 성균관대에서 2009년 섬유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금년 2월 중앙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전공은 피부 분야로 ‘특수섬유를 통한 약물전달효과’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박사학위 한 개를 따기도 쉽지 않은데 왜 두 개나 받았을까. 그는 “기능성 섬유를 연구하다 보니 피부에 대해 깊이있게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며 “그래서 50대에 접어들어 또다시 박사과정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고 사장이 기능성 원단 개발에 나선 것은 그의 인생역정과 관련이 있다. 대학 재학 중 장사를 하면서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곰곰 생각했다. 겨울에 팔던 양말을 여름에도 판매할 순 없었다. 여름에는 서민들이 시원하게 샤워를 할 수 있는 샤워기꼭지가 필요했다. 이런 생각은 사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코오롱에서 직장생활을 한 뒤 창업했고, 처음으로 히트작을 낸 게 바로 빨리 마르는 섬유원단인 ‘드라이존’이다.

“여름철 운동 후에 땀이 밴 옷을 입으면 불쾌하잖아요. 빨리 마르면 얼마나 상쾌합니까.” 물을 붓기가 무섭게 마르는 섬유다. 고 사장은 “드라이존은 물을 밀어내는 실 등을 섞은 뒤 특수가공기술을 접목시킨 원단”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일본 종합상사에 수출하면서 사업의 기틀을 잡았다.

그 다음엔 여름철에 시원한 느낌이 나는 섬유원단을 개발했다. 공기순환이 잘되고 자외선을 차단하며 속건기능을 갖춘 제품이다. 겨울철 야외활동 때 체온을 보호하는 원단도 개발했다. 고 사장은 “섬유 표면에 특수가공된 친환경 화학소재로 섬유의 온도를 올려주는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이 다양한 제품을 개발한 것은 연구개발을 중시하는 경영에서 비롯됐다. 그는 최고경영자인 동시에 연구원이다. 누구보다 연구에 몰입한다.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밤새 수십장의 연구논문을 쓸 정도로 집중한다. 최근 의학박사 학위를 딴 것도 피부를 모르면 기능성원단 개발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벤텍스가 획득한 특허는 72건, 출원한 특허는 44건이며 둘을 합치면 116건이다.

고 사장은 “최근에는 태양광을 받으면 온도가 올라가는 볼(ball) 타입 충전재인 솔라볼도 개발했다”며 “천연소재인 다운(down)을 대체할 수 있어 동물 보호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측정장비도 직접 개발한다. 이 회사 연구소는 각종 실험장비로 가득차 있다. 광조사(optical irradiation)에 의한 온도변화시험기를 비롯해 흡습발열시험기, 흡수냉감시험기 등 여러 장비는 그가 직접 만든 것이다. 일반적인 제품이 아닌, 특수원단이다 보니 이를 테스트할 장비마저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연구개발 덕분에 벤텍스는 특허청장상 국무총리표창 다산기술상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 대통령표창 동탑산업훈장 등 수많은 표창과 포상을 받았다.

고 사장은 “최근 한 글로벌 스포츠 의류업체가 우리 원단을 3년 동안 검사한 끝에 100만벌의 옷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의 원단을 주문했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에는 브라질 올림픽이 있기 때문에 주문 물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고 사장은 “섬유산업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 인구 수십억명이 모두 옷을 입는 만큼 섬유는 사양산업이 아니라 성장산업”이라며 “다만 인건비가 높은 한국에서는 기능성 원단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 사장은 “세계적인 히트 원단을 개발하면 글로벌 섬유기업도 탄생할 수 있다”며 “문제는 원천기술 확보인데 국내 기업들이 그동안 새로운 기능의 섬유개발에 나서지 못한 게 섬유산업이 위축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벤텍스를 기술집약적인 ‘섬유화학기업’으로 키워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걸겠다고 강조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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