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참패한 노동당의 반성문
[ 박종서/임근호 기자 ] 총선 참패의 충격에 빠져 있는 영국 노동당 내부에서 근본적인 노선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사진)를 비롯해 유력 당대표 후보인 추카 우문나 의원 등은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주력하는 정책으로는 더 이상 정권 창출을 기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약자에 대한 연민과 보호도 중요하지만 성공과 풍요에 대한 희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7일 하원 총선거에서 집권 보수당이 305석(전체 650석)에서 331석으로 단독 과반을 차지한 반면 노동당은 25석을 잃어 의석수가 232석으로 줄어들었다. ‘초박빙’ 승부를 예상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소수정부 구성 계획까지 세워뒀던 노동당은 에드 밀리밴드 대표의 사퇴로 새로운 수장부터 찾아야 할 처지다.
“기업에 적대적이었다”
블레어 전 총리는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일요판 옵서버 기고를 통해 “노동당이 정권을 탈환할 수 있는 방법은 중도성향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것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방법으로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내놓고 공공서비스 개혁을 위한 대담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4년부터 노동당 대표를 맡았던 블레어 전 총리는 2007년 총선에서 소득분배 강화와 국유화 등 전통적 좌파 공약에서 벗어나 부를 축적하려는 기업과 개인을 적극 후원하겠다는 이른바 ‘제3의 길’로 418석을 얻어 압승했다.
블레어 전 총리는 “노동당의 정책이 약자에 대한 연민과 보호에 그쳐서는 곤란하다”며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돕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비판했다. 지금의 노동당은 정당한 노력으로 재산을 늘리려는 사람들을 지지하지 못하고 단순히 지켜보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유력한 차기 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우문나 의원도 친기업 중도노선을 들고 나왔다. 그는 “불평등과 가난 그리고 불의를 강조하느라 정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쌓으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우문나 의원은 “좋은 일자리를 강조하면서도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에 적대적인 인식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영국 경제계, 노동당 반성에 반색
노동당 내부의 반성에 대해 영국 경제계는 반색하고 있다. 영국 경제계는 선거기간에 발표된 노동당의 반기업적 공약에 대해 크게 우려해왔다. 노동당은 15만파운드(약 2억5276만원) 이상 소득자에 대해 45%인 최고 세율을 50%로 인상하겠다거나 200만파운드 이상 고가주택에 보유세를 신설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내놨다.
2017년까지 에너지 요금을 동결하고 현재 6.7파운드인 시간당 최저임금을 2019년까지 8파운드로 올리겠다고도 했다. 모두 기업에 부담되는 공약들이다. 미국의 대표적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노동당이 정권을 잡으면 (영국 투자기업들은) 영국을 떠나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영국 노동당의 완패는 내년에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을 포함해 다른 나라의 선거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CNN 방송은 “노동당의 선거운동은 보편적 복지와 포퓰리즘의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냈다”며 “미국 선거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노동당 패배엔 ‘영국병’ 교훈 있었다
1960~1970년대 영국 경제의 몰락을 가져온 ‘영국병’은 1941년 노동조합 권유에 따라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가 작성한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라는 보고서(일명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시작됐다. 영국 정부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1944년 국민보험법, 1945년 가족수당법, 1946년 국민의료서비스법을 제정하는 등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대표되는 광범위한 복지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복지 확대는 국민들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렸고, 재정지출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1970년대 들어 영국의 사회복지 지출은 연간 정부 예산의 40%를 넘어섰다. 공공부문 파업과 제1차 오일쇼크가 겹치며 허약해진 영국 경제는 무너져 내렸고 1976년 급기야 IMF의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르렀 ? 영국병은 보수당 출신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1979년 집권한 뒤 고강도의 개혁을 추진하고 나서야 고쳐질 수 있었다. 대처 전 총리는 재정지출 삭감, 공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와 경쟁 촉진을 내세웠고 1983년 영국 성장률은 3%대를 회복했다.
박종서/임근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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