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석 소설 자유부인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성문 고개, 사랑의 언덕길이 지금의 덕수궁 돌담길이다. 소설이 나온 게 1954년이니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끈 역사가 꽤 길다. 요즘도 계절 따라 꽃과 낙엽, 눈 덮인 언덕길의 정취가 아름답다. 가을날 노란 은행잎을 ‘즈려밟으며’ 추억에 잠기는 사람들의 표정은 더욱 그렇고.
덕수궁 돌담길 일대는 조선시대 왕실과 양반들의 주거공간이었다. 19세기 말에는 영국 미국 러시아 등 외국 공관과 선교사들이 세운 정동교회, 현대식 교육기관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국내 첫 호텔인 손탁호텔 등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 개화기 외국인들에게는 가구거리(Furniture Street), 장롱거리(Cabinet Street)로도 불렸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에 따르면 외국인들 ?서랍 달린 큰 책상과 결혼장롱에 매혹돼 영국공사관 근처를 장롱거리라고 이름 붙였다.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한국에 온 조지 길모어 목사는 “선교사들이여, 책상 가구는 갖고 오지 마시라. 이곳엔 훌륭한 목재가구가 너무나 많다”고 썼다.
덕수궁은 한때 경운궁으로 불렀다가 고종 퇴위 이후에 새로 붙인 이름이다. 소설에 나오는 영성문은 1920년대에 없어졌다. 하지만 사랑의 언덕길 덕분인지 그 이름은 오래 남았다. 그런데 왜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말이 나왔을까. 여러 속설이 혼재한다. 배재·이화학당 남녀 학생들의 갈림길, 이들의 연애와 이별, 경성재판소에서 이혼하는 부부 등 근거(?)도 다양하다. 그러나 젊은 연인들을 시샘하는 질투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옳지 싶다.
덕수궁 돌담길은 여전히 낭만적이다. 연인들이 걷기에 더없이 좋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정동극장 등 문화시설이 많아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영국대사관 때문에 끊겼던 돌담길 170m 구간이 내년쯤 연결될 모양이다. 덕수궁 수문장과 영국 근위병의 순회경계 행사까지 더해지면 그것도 새로운 볼거리가 되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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