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 좋다] '서강연극회', "행복으로 이끈 둥지…선후배 45년 나이차 잊었죠"

입력 2015-05-17 21:05  

100회 동문 기념공연 무대에 올리는 '서강연극회'

연극·영화 관련학과 없는 서강대
문성근·정한용·이정향 등 배출
이희성 前 인텔 사장 "경영도 연기"



[ 이미아 기자 ]
“아이고, 선배. 제가 연기를 잘해서 주연급 배역 맡은 거라니까요.” (이희성 전 인텔코리아 사장·53·서강대 전자공학과 81학번)

“제작비 댄다는 핑계로 돈으로 배역 산 거 모를 줄 알고? 하여간 저거 못 말려.” (박이준 서강연극회 동문회장·64·서강대 물리학과 70학번)

“잘한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저분들 그 말 진짜인 줄 알아요. 다른 일정 미루고 이 작품 연출하는 거니까 철저히 하고 있어요.” (황재헌 연출가·서강대 경제학과 94학번)

지난 13일 서울 신수동 서강대 메리홀에선 ‘서강연극회’ 소속 동문과 재학생들이 100번째 정기공연 연습 준비에 한창이었다. 연습 전엔 중간 중간 농담도 자주 오갔다. 하지만 각자 무대 의상을 갖춰 입은 뒤 ‘런 스루(실제 공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중간에 끊지 않고 진행하는 연습)’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동문부터 파릇파릇한 분위기의 15학번 새내기 재학생까지 40여명의 배우가 연출가의 지시에 따라 바삐 움직였다. 무대에선 선배와 후배, 학번과 직업의 구분이 없었다. 동아리 내 최연장자와 최연소자 간 45년이라는 나이 차도 무대에선 허물어졌다.

이들이 공연하는 작품은 ‘사쿠라 가든’.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을 195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각색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공연을 기획했고, 정식 연습은 지난 1월부터 시작했다. 이번 100번째 공연은 1960년 서강대 개교와 함께 시작된 서강연극회의 55년 역사를 기념하는 중요한 행사다. 관람권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서 표를 5000원에 판매한다. “프로 극단 못지않은 책임감을 갖기 위해서”란다. 15일부터 시작된 사쿠라 가든은 오는 23일까지 메리홀에서 공연한다.

서강대엔 원래 연극·영화 관련 전공학과가 개설돼 있지 않다. 하지만 서강연극회는 국내 유명 배우 및 연출가들의 산실 역할을 했다. 배우 문성근(무역학과 72학번)과 정한용(경제학과 74학번), 김철리 경기도립극단 단장(신문방송학과 73학번)과 영화감독 이정향(불문학과 83학번) 등 내로라하는 문화예술인이 서강연극회 출신이다.

2010년부터 서강연극회 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박이준 씨는 “1970~1980년대엔 음향과 조명기구가 제대로 없어 전부 빌려야 했고, 유신체제와 신군부 시절엔 군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할 작품을 고르느라 진을 뺐다”고 회상했다.

이번 작품의 각색과 연출을 맡은 황재헌 씨는 연극 ‘리타’, 뮤지컬 ‘클로저 댄 에버’ 등 다수의 작품을 연銖?스타급 프로 연출가다. 그는 “서강연극회는 나를 ‘배고프지만 행복한’ 연극계로 나아가게 해 준 둥지 같은 곳”이라며 “동문끼리 하는 기념공연의 차원을 넘어 일반 관객에게도 의미 있는 공연으로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희성 전 사장은 “돌이켜보면 인텔코리아 사장으로 일한 지난 10년 자체가 내겐 연극이었다”고 술회했다. 또 “신제품 출시 발표회 때마다 원고를 준비하고, 제스처와 연설을 준비하면서 연극회 시절을 자주 떠올렸다”며 “졸업 학점이 2.08점이었는데 그게 다 학창 시절 연극회 활동을 너무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단역을 맡은 서강대 15학번 새내기 진유나 씨(19·수학과)는 “처음엔 부모님 또래인 선배들이 많아서 떨리고 무섭기도 했는데 이젠 연습 날엔 밥값이 전혀 안 들어서 오히려 기쁘다”고 했다. 사쿠라 가든의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연극배우 노윤정 씨(48·종교학과 85학번)는 “딸이 대학교 1학년”이라며 “내 딸 같은 후배, 하늘 같은 선배들과 함께 한 무대에 오른다는 게 무척 설레고 기쁘다”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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