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PD 김영희 "예능한류 최대 경쟁력은 인간미…중국 자본·인력과 결합 땐 세계화"

입력 2015-05-17 21:12  

MBC 사표 내고 중국 진출하는 스타 PD 김영희

韓·中 정서 비슷한 게 히트 비결
합작사 세워 연내 첫 방송 목표
한국 PD 4~5명 드림팀 구성



[ 유재혁 기자 ] “중국에서 새 일을 시작합니다. 29년간 다닌 MBC가 지난달 사표를 수리했어요. 중국의 모든 기관과 주요 제작사가 모여 있는 베이징으로 갑니다. 중국 전문가들과 합작사나 자문회사를 세워 새 프로그램을 제작해 가급적 올해 안에 처음 방송할 계획입니다. 국내 베테랑 PD 4~5명으로 구성된 드림팀이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MBC 간판 예능 PD였던 김영희 프로듀서(55)가 중국행 출사표를 던졌다. ‘아빠 어디가’와 ‘나는 가수다’ 중국판 제작을 지도해 히트시키며 ‘예능 한류’를 불러일으킨 그는 올 들어 중국을 자주 찾아 합작사를 세우는 절차를 밟고 있다. 서울 상수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중국에서는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을 만들 겁니다. 핵심 PD들은 한국인이지만 대다수 제작 인력은 중국인이 될 겁니다. 생산한 콘텐츠는 중국산이 되고요. 한·중이 함께 만든 프로그램을 중국 5대 메이저 방송사를 중심으로 내보낼 계획입니다.”

중국의 5대 메이저 방송사는 후난위성TV, 장쑤위성TV, 저장위성TV, 동방위성TV, 베이징위성TV 등이다.

“성공의 열쇠는 서로 얼마나 소통을 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양측이 서로 마음을 열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이 앞선다고 호령하는 순간, 망합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배울 게 더 많아요.”

그는 최근 한·중 간 공동제작이 늘면서 스태프 사이에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측이 서로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3년간 중국에서의 현장 경험을 통해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김 프로듀서는 MBC가 2011년 ‘나는 가수다’ 포맷을 중국에 수출한 이듬해 10월부터 후난위성TV로 가서 중국판 제작에 기획, 구성, 캐스팅 등의 자문 역으로 참여했다. 2013년 1월 첫 방송부터 4회 연속 제작을 지도했다. 첫회 시청률은 1.8%였고 13회 방송하는 동안 3%까지 솟구쳤다. 중국에서는 1.5%부터 ‘대박’으로 친다.

그는 뒤이어 ‘아빠 어디가’ 중국판을 만들 때도 첫 2회분을 비롯해 여러 회 분량을 지도했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 5%대까지 올라 ‘초대박’을 거뒀다.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가수다’ 중국판에서 중국인도 한국인과 감성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녹화장에서 한 가수가 ‘아버지’에 관한 노래를 부를 때 관중 500여명 중 200명가량이 울더군요. 한국처럼 프로그램의 진정성이 먹힌 거죠.”

‘아빠 어디가’는 한 명만 낳아 ‘소황제’ ‘소공주’로 기르는 중국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고민을 건드렸다. 이 프로그램을 본 학부모들은 인터넷에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쏟아냈다. 아이들을 엄하게 다스리는 것만 생각했는데, 집안에서 자상하게 가르치는 법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배웠다는 것이다.

그는 자문 역으로 일하는 동안 프로그램당 500여명의 스태프와 현장에서 가까워지며 신뢰를 쌓았다.

“혼자 가서 일일이 제작 노하우를 전수했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통솔력이 집중되니까 더 효과적이었어요. 중국인들은 가르친 것을 금세 배우고 넘어서더군요. 엄청난 열정과 능력이 있어요.”

중국 예능 프로그램은 ‘나는 가수다’ 중국판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전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방송 포맷을 구입했지만, 이 프로그램 이후에는 한국 포맷을 사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1박2일’ ‘K팝스타’ ‘런닝맨’ 포맷이 중국에 줄줄이 수출된 것도 이 때문이다. SBS ‘런닝맨’ 등은 포맷 수출 후 여러 명의 한국 제작진이 현장으로 날아가 지도했다. 그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독특한 제작방식으로 전 세계 최고의 시스템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경쟁력은 인간미예요. 서양 예능 프로그램은 전적으로 흥미 위주거든요. 잔혹함과 비장함까지 서려 있죠. 우리는 경쟁 구도라도 서로 감싸주고 위해줍니다. 서양에도 먹힐 겁니다. 누구나 따뜻함을 좋아하니까요. 따스함에서 진정한 카타르시스가 생겨나죠. 동양적인 정서는 전 세계에 통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한국이 중국인들의 규모에는 당할 수가 없다고 했다. 가령 ‘나는 가수다’ 중국판을 녹화할 때 한국에서는 100~200명 규모의 스태프들이 당일 아침 일찍부터 착수하면 되지만 중국에서는 500여명이 참여하고, 베이징과 홍콩 등에서 비행기를 타고 전날 도착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치밀함과 섬세함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정도로 뛰어났어요. 의상, 조명, 소품 등에 관한 치밀함이 선진국보다 앞서 있죠. 어떻게 창작할지만 아직 잘 모르는 단계예요.”

그는 한국인의 창의력과 중국인의 스케일을 합치면 글로벌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에는 노하우가 금세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적극 가르치고 전수하면서 함께 배우고 발전하는 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한국의 창의력과 중국의 자본, 인력을 결합해 최고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해내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게 제 목표입니다.”

‘쌀집 아저씨’란 별명으로 유명한 김 프로듀서는 1986년 MBC에 입사해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양심 냉장고’ ‘칭찬합시다’ ‘느낌표’ ‘나는 가수다’ 등을 연출해 스타 PD로 입지를 굳혔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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