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 싸게 팔겠다" 출발했는데…이름값 못하는 알뜰주유소

입력 2015-05-17 21:21  

산업리포트 / 3년 만에 줄어든 알뜰주유소

일반 주유소와 가격 차이 30원밖에 안 나 소비자들 외면
알뜰주유소 세제 혜택도 작년 말 대부분 사라져



[ 도병욱 기자 ]
대기업 간판을 단 주유소보다 값싼 기름을 공급하겠다는 취지로 2011년 말 처음 도입된 알뜰주유소 숫자가 3년여 만에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다. 출범 당시부터 “시장을 무시한 발상”이란 비판을 받을 만큼 원가 경쟁력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작년 말 정부의 세제 혜택이 종료된 탓이다. 여기에 저유가로 L당 20~30원을 아끼기 위해 알뜰주유소를 찾는 수요가 급감한 영향도 크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알뜰주유소 숫자를 전체 주유소의 10% 수준인 1500개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지만 정유업계에선 “현실성이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일반 주유소보다 별로 안 싸

17일 한국석유공사가 전하진 새누리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 1분기 말 기준 전국 알뜰주유소는 1135개로 작년 말(1136개)보다 1개 줄었다. 분기 기준으로 알뜰주유소?감소한 것은 2011년 12월 1호점이 문을 연 이후 처음이다. 알뜰주유소는 출범 이후 작년 4분기까지 분기당 평균 94.7개 증가했다. 한 달에 31개씩 늘어난 것이다.

올 들어 알뜰주유소 숫자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무엇보다 저유가 영향이 크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과거 휘발유값이 L당 2000원 안팎을 넘나들 땐 값싼 기름을 넣기 위해 알뜰주유소를 찾는 수요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기준 전국 알뜰주유소의 휘발유 가격(보통 휘발유 기준)은 L당 평균 1515원44전이다. 정유사 브랜드를 단 주유소 평균은 L당 1547원77전이다. 알뜰주유소가 L당 32원가량 싸지만 이 정도로 소비자의 발길을 돌리기엔 부족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알뜰주유소는 일반 주유소보다 기름을 L당 100원가량 싸게 파는 걸 목표로 출범했지만 지금은 그런 곳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홍준 한국자영알뜰주유소협회 사무국장도 “고유가 시대에는 L당 15~30원을 아끼기 위해 알뜰주유소를 찾아다니는 소비자가 많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알뜰주유소가 기존 주유소와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정유소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현대오일뱅크(L당 평균 1531원30전)와 비교하면 알뜰주유소의 매력은 더 떨어진다.

◆“알뜰주유소 정책 재검토” 목소리도

구조적으로 알뜰주유소의 기름값 인하가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알뜰주유소가 기름을 공급받는 방식이 기존 주유소와 별 차이가 없어서다. 현재 알뜰주유소에 공급되는 기름은 대부분 석유공사가 SK에너지, GS칼텍? 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기존 정유사로부터 구입한 것이다. 알뜰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대부분 자사 브랜드를 단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석유공사에 공급하는 가격을 무턱대고 낮출 수 없다”며 “석유공사의 알뜰주유소 공급가는 일반 주유소보다 L당 5~10원 정도밖에 안 싸다”고 말했다.

알뜰주유소에 대한 세제 혜택도 거의 사라졌다. 알뜰주유소 사업자에게 주어졌던 재산세 50% 감면 혜택이 작년 말 종료됐다. 소득세·법인세 감면 혜택은 2013년 말 사라졌다. 현재 남은 혜택은 일반 주유소가 알뜰주유소로 전환할 때 3000만원 한도에서 전환 비용을 지원하는 게 전부다.

정유업계에선 정부가 알뜰주유소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유소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특정 주유소에 시설전환 자금을 지원하고 세금 혜택을 제공한 것 자체가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정책”이라며 “알뜰주유소가 소비자에게 별다른 혜택을 주지 못하고 주유소업계의 사정만 악화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알뜰주유소를 시장질서와 공정경쟁을 해치는 대표적 사업으로 지목했다.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장기적으로 시장질서와 공정경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반면 일각에선 알뜰주유소 덕분에 대기업 브랜드의 정유사들이 기름값을 쉽게 올리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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