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 법안에 3.45개 중복 발의…의원 '실적쌓기'에 법안처리 지연

입력 2015-05-17 22:26  

'중복 입법'에 막힌 국회

4월 국회 통과 법안 22개, 법안 76건 묶어 처리
유사법안 비교표 만드느라 정책검토는 소홀해져
反시장주의 법안 중복발의 '단골 메뉴'



[ 진명구 기자 ]
지난 12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단 세 개의 법안만 처리한 국회에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다.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의결을 거쳐 대기 중이던 57개 민생법안이 여야 정쟁에 발목이 잡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비난 여론 속에 여야 국회의원 10여명은 자신들이 세 개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며 앞다퉈 의정활동 성과를 홍보하는 데 앞장섰다. 이들 세 개 법안은 각각의 상임위원회에서 내용이 비슷한 법안을 병합해 상임위원장이 ‘대안’ 형태로 발의한 것들이다.

주요 이슈 선점 및 입법 성과 등을 위해 ‘마구잡이’식으로 발의한 중복 법안들이 입법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늑장 국회’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제신문이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된 49건의 법안을 조사한 결과 각 상임위원장이 같은 이름으로 제출된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위원장 대안’으로 병합한 사례가 22건이었다. 총 76개 법안을 병합한 것으로 1개 법안당 약 3.45개의 비슷한 법안이 중복 발의된 것이다.

◆중복 입법, ‘늑장 국회’의 주범

연말정산 후속 대책으로 발의된 소득세법은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과 심재철 의원이 발의한 두 개 법안을 합쳤다. 다자녀 가구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내용을 정하면서 각각 자녀 수에 따라 세액공제 액수만 조정했다. 지방재정법(4명 대표 발의)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3명이 대표 발의) 등도 법안 내용은 비슷했다.

병합 심의한 법안은 각각의 법안에서 1~2개 항목을 수정하는 형태의 것이 대부분이다.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부결된 어린이집 폐쇄회로TV(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16개의 법안을 병합해 보건복지위원장 대안으로 본회의에 상정됐다. 이들 법안은 영상녹화물 보관 의무, 기간 등에 차이가 있을 뿐 각각의 내용이 비슷한 중복 법안들이다. 국회 상임위원회 전문위원실 조사관은 “같은 내용으로 법안이 많이 계류돼 있으면 한정된 시간과 인력상 아무래도 법안심의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며 “법안 비교표를 만드느라 정책 검토는 소홀해진다”고 말했다.

법안을 입안하는 단계에서 이미 제출된 다른 법안에 같은 내용이 있으면 제출하지 못하도록 국회 규칙에서 정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자구를 일부 수정하거나 간단한 수치를 변경해 발의하는 것까지 제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기업·반시장 법안 중복 생산

기업 규제 등 반(反)시장주의 법안들이 중복 발의의 ‘단골’로 활용된다. 지역구 민원 처리를 위한 ‘묻지마’식 발의?갈수록 늘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이 대표적이다.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과 심재권 백재현 홍익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대형마트의 입점 규제와 전통시장 상권 보호를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을 제출했다. 손 의원과 백 의원은 글로벌 가구업체인 이케아 등도 대형마트와 같은 규제를 받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백 의원은 이케아가 들어선 경기 광명갑을 지역구로 두고 있고, 손 의원은 최근까지 새누리당 광명을 당원협의회 위원장(옛 지구당위원장)을 맡았다.

국회 관계자는 “법안 중복 발의 이유는 의원들이 실적을 올리려는 의도 때문”이라며 “특히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와 같은 여론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는 법안들은 우후죽순 격으로 제출되곤 한다”고 말했다.

진명구 기자 pmg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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