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TSMC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업체다. 그런데 이 회사는 기업설명회에서나 투자자들을 만나면 “TSMC는 서비스회사”라고 소개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는 한 정보기술(IT) 콘퍼런스에서 “우리는 제조업 벤처캐피털”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TSMC는 반도체 설계회사들이 설계디자인을 가져오면 이를 위탁받아 생산해주는 제조업체인데 벤처캐피털이라니?
IT 분야 애널리스트들에 따르면 TSMC는 생산능력의 일정 부분을 작은 신생업체들에 할당한다. 이들이 아이디어와 설계를 들고 오면 기존 위탁생산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비슷한 성능을 구현하면서도 더 싼값에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준다. 그리고 이를 ‘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업체들에서 나오는 매출이 전체의 10~20%가량 된다고 한다.
미래고객 확보를 위한 先투자
중국 스마트폰업체 샤오미는 ‘짝퉁 애플’로 불린다. 애플 제품을 거의 비슷하게 모방하기 때문이다. 샤오미는 설립 5년 만에 삼성과 애플의 뒤를 이어 세계 3위 스마트폰업체로 급성장했다. 중국에선 지난해 삼성을 제치고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샤오미 제품은 한국 네티즌 사이에서 ‘대륙의 실수’로 통한다. 중국 제품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품질 떨어지는 싸구려 제품이 아니라 가격 대비 성능과 디자인이 괜찮아 ‘중국에서 실수로 이런 제품이 나왔을 것’이란 뜻에서 붙여진 말이다. 그냥 베끼는 것에 그쳤다면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배경으로 했더라도 이렇게 단기간 내 크진 못했을 것이다. 제품 사양은 별 차이가 없고, 가격은 훨씬 싸고, 여기에 ‘미펀(米粉·샤오미의 팬이라는 뜻)’이란 사용자 그룹을 활용해 이들이 제안하는 개선할 점과 아이디어 등을 반영해 매주 운영체계를 업그레이드하는 식으로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 냈다.
비즈니스 모델의 경쟁력이 중요
제조업에서도 기술력뿐 아니라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에 대한 스토리, 즉 비즈니스 모델이 중요해지고 있다. 소비자 취향은 다양해지고 ‘변심’도 빨라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새 기술뿐 아니라 기존 기술들을 엮고 창의성을 더해 새 제품과 서비스, 경험을 만드는 기업들이 부상하고 있다. 샤오미의 성공엔 뛰어난 기술보다 팬과의 협업 체계 등 혁신 비즈니스 모델이 큰 역할을 했다. 전 세계 파운드리시장의 54%를 점유하는 TSMC는 성장 잠재력이 있는 기업들을 미래의 더 큰 고객으로 만들어 가는 구조가 비즈니스 모델 안에 들어 있다.
한국의 제조업은 과거 저임금에 의존해 성장했다. 이 모델을 중국에 넘겨준 후엔 기술로 차별화했다. 그런데 중국이 놀라운 속도로 기술 격차를 좁혀오고 있다. 최근 한 물墟閨茱該銹뮷漬×坪?발표한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1.4년에 불과하다. 반도체를 빼면 이미 격차가 사라졌다는 진단도 있다. IT업계 한 임원은 “계란까지 모조품으로 만들어 내는 중국인들의 기발한 발상과 뭐든 닥치는 대로 만들어 보면서 쌓였을 노하우가 결합된다면 제2, 제3의 샤오미가 쏟아져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제조업이 살아남을 길은 결국 고부가가치화다. 기술력뿐 아니라 혁신적이고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런 변화를 기업 관료주의가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박성완 국제부장 psw@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