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문화가 있는 역

입력 2015-05-18 20:46  

철도 이용객 늘면서 철도역 성격도 변해
'한국의 얼굴' 서울역,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

최연혜 < 한국철도공사 사장 choiyeonhye@korail.com >



지난 4월 호남선 KTX와 포항 직결선이 개통되고, 관광의 달 5월에 접어들면서 철도 이용객이 크게 늘었다. KTX와 새마을호, 무궁화호 같은 간선열차는 물론 5대 관광열차인 중부내륙 순환열차 ‘O트레인’과 백두대간 협곡열차 ‘V트레인’, 정선아리랑열차와 서해금빛열차, DMZ열차를 비롯해 ITX청춘과 수도권 전동차에 이르기까지 코레일은 하루 약 3100회 열차 운행으로 340만여명을 태운다. KTX 누적 이용객이 5억명에 가까우니 전 국민이 최소 10번씩은 KTX를 탄 셈이다. 철도역이 단순히 기차를 타기 위해 스쳐 지나가는 곳에 머물러선 안 되는 이유다.

서울역은 하루 유동인구가 30만명에 달하고, 수많은 외국인도 이용하는 ‘한국의 얼굴’이다. 그래서 코레일은 서울역을 한국의 문화와 정체성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서울역 맞이방 3층의 한 벽면은 서예가 하석 박원규 선생의 작품이 장식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옥중 글씨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글귀가 한글과 한자로 쓰여 있다. 마치 철길처럼 보이는 글자 형상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약 3000년 전 쓰였던 갑골문자의 책(冊)자라 한다. 절묘한 은유로 철도와 배움의 중요성을 표현한 작가의 상상력이 감탄을 자아낸다.

서울역 귀빈실에도 박 선생이 쓴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사자성어가 광개토대왕비문의 서체로 적혀 있다. 만절필동은 ‘황하는 1만번을 꺾여도 결국 동쪽으로 흐른다’는 뜻이다. 어떤 역경에도 반드시 목표를 이루는 굳은 의지를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박 선생은 “유라시아 대륙 철도가 남북 분단을 극복하고 마침내 동쪽 끝의 대한민국 철도와 연결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씨를 썼다”고 했다. 서울역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이 있을까 싶다.

서울역엔 윤국자 화백의 무궁화 그림도 있다. 한없이 곱고 아름다운 선과 색채에서 뿜어나오는 기개와 카리스마가 한국 국화인 무궁화의 품격을 나타낸다. 평생 무궁화만 그렸다는 칠순 여류작가의 나라 사랑이 한눈에 전해진다.

서울역에 올 기회가 있다면 조금 걸음을 서둘러 이 작품들을 감상해 보길 바란다. 코레일은 앞으로도 ‘문화가 숨쉬는 철도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최연혜 < 한국철도공사 사장 choiyeonhye@kor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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