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보수주의가 곧 자유주의라는 착각

입력 2015-05-19 20:55  

"변화 싫어하는 엘리트주의 보수철학
제한없는 정부권력 신봉하는 이념

좌파와 타협해 입법독재 초래
자생적 시장의 힘 믿고 늘 경계해야"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



최근 영국에서 총선거가 실시됐다. 증세 억제, 복지예산 축소 등의 공약으로 유권자의 표심을 얻은 집권 보수당이 부자 증세, 복지 확대 등 사회주의 성격의 공약을 내걸었던 노동당을 누르고 압승을 거뒀다.

흥미로운 건 보수당의 승리는 자유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보수주의의 승리’라는 평가다. 이런 평가를 주목하는 이유는 자유주의를 보수주의와 동일시하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이념적 풍토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시장, 제한된 정부, 법치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주의는 독립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보수와 전적으로 다른 이념이라는 걸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념적 분별을 통해서만이 자유시장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현실에 적합한 정책 개발도 가능하다.

우선 주목할 것은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같은 게 아니라 노예와 주인처럼 타고날 때부터 우열(優劣)이 있다는 보수주의의 고유한 인간관이다. 보수의 원조인 철학자 플라톤의 ‘자연적 불평등’에서 비롯된 인간관으로부터 우월한 엘리트가 특권을 누려야 한다는 귀족·엘리트주의가 생겨났다. 그러나 엘리트주의를 배격하고 철학자도 짐꾼과 근본적 차이가 없다는 ‘자연적 평등’을 선언하면서 등장한 게 애덤 스미스 전통의 자유주의가 아니던가. 그런 평등에서 도출된 게 모든 특권을 금지하는 자유의 법이다.

보수철학으로는 거대한 번영을 안겨준 시장의 진화도 이해할 수 없다. 보통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시장을 엘리트의 계획된 산물로 여기는 보수의 시각은 치명적 자만이다. 보수사상의 특징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는 새로운 것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태도다. 보수주의가 변화를 막기 위해서 유감스럽게도 사회주의를 불러들여 정부 권력을 이용하는 것도 쳐다보기 민망하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변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스로 변화하도록 내버려 두고 새로운 것의 발견을 즐길 용기와 자신감이 있다. 그런 배짱은 자생적 변화와 진화에 대한 낙관에서 나온다. 첩첩이 쌓인 정부 규제들 때문에 그런 변화가 질식되면 지체 없이 경제적 자유의 확대를 위한 급진적 개혁을 요구하는 게 자유철학이다. 시장은 어떤 변화든 잘 소화해 빈곤, 실업, 저성장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는 자생적 힘에 대한 확고한 인식 때문이다.

보수철학에는 안타깝게도 그런 이론이 매우 부족하다. 사회주의에서 전향한 지식인들이 새로운 정신적 고향을 자유주의 대신 보수주의에서 찾는 이유도 시장의 자생적 질서에 대한 인식의 부족 때문이다. 오늘날 같은 장기불황 시대에 긴요한 건 원칙도 없는 이념적 기회주의로서의 보수가 아니라 愍?恝?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철저히 일소할 자유사상이다.

보수사상이 믿는 건 시장이 아니라 정부 권력이다. 보수는 누가 지배하느냐의 문제를 중시하고 정부 권력을 제한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현명하고 도덕적인 엘리트가 나라를 다스리면 그의 권력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게 보수철학의 가부장적 국가관이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를 유린해 참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 준 게 그런 가부장의 탈을 쓴 국가의 제한 없는 권력이었다는 건 이론과 역사가 입증한다. 그래서 국가 권력의 침해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누가 권력을 잡고 지배하든 그 권력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원칙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정치는 천민·중우민주주의라는 비판도 보수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민주 그 자체는 반대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다. 반대할 건 좌파가 평등·복지국가를 위한 혁명적 수단으로 만든 제한 없는 민주주의와 입법 권력이다. 좌파와 타협해 오늘날 입법 독재를 초래하는 데 일조한 보수주의도 야속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보수주의는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아니다. 그것은 이념적으로 기회주의적이고 때때로 사회주의에 가까이 가는 이념이다. 따라서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유주의자들에게 보수는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늘 경계의 대상이다.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kwumin@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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