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왕오천축국전

입력 2015-05-20 20:36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중국 간쑤성 북서쪽에 있는 둔황. 모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명사산(鳴沙山) 동쪽 절벽에 막고굴(莫高窟)이 있다. 4세기 이후 1000여년에 걸쳐 수도자들이 파 놓은 석굴이 500개 가까이 된다. 오랫동안 사막의 먼지에 묻혀 있던 이곳에서 수만점의 5~11세기 유물이 발견된 것은 1900년 5월이었다. 석굴 16동을 수리하던 사람이 모래벽 너머로 수많은 경전 사본이 소장된 17동, 곧 장경동(藏經洞)을 발견한 것이다.

신라 승려 혜초(慧超·704~787)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도 이곳에서 1100여년을 잠자고 있었다. 세계 유일의 8세기 인도·중앙아시아 기행기 《왕오천축국전》은 그 전까지 이름만 전해오다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가 사들인 유물 속에서 앞뒤가 잘린 두루마리 필사본으로 발견됐다.

730년 전후에 쓰여진 이 책은 세계 4대 여행기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오도록의 《동유기》,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가 13~14세기에 나왔으니 500년 이상 앞섰다. 혜초는 처음에 중국 승려로 알려졌다가 1907년 일본 학자에 의해 신라 승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6세에 당나라로 건너간 혜초는 20대 때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났다. 약 4년 동안 당시 인도의 다섯 천축국과 지금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등을 돌아보고 종교와 지리, 풍물 등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 시절 인도에는 감옥이나 사형제도가 없고, 죄를 지은 이는 벌금으로 다스리며, 왕과 제후들이 코끼리를 수백마리씩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오천축국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술 취해 싸우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구절도 있다.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 중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혜초 스님이 예전에 인도를 다녀가셨던 곳 중에 베나리스가 있는데 그게 바로 제 선거구”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른바 ‘모디노믹스(Modinomics)’로 인도 경제개혁을 이끌고 있는 그가 “우리는 한국 전화로 통화하고, 한국 차를 타며, 한국 컴퓨터로 일하고, 한국 TV를 본다”는 얘기 끝에 양국의 오랜 인연을 언급한 것이다.

모디는 한·인도 최고경영자포럼에서도 그 얘길 했다. 빡빡한 일정 중에 국내 주요 기업인들을 일일이 만나고 경제협력을 구하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200여년 전 젊은 한국인이 열었던 그 여로 위에 새로운 교역로를 닦아보자는 국가 경영자의 충정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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