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 그린벨트, 주민이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든다

입력 2015-05-21 21:05   수정 2015-05-22 05:37

환경 따른 개발, 생활불편 해소
해제총량 6% 한정, 난개발 차단
무허가 축사 등은 녹지기능 회복

유일호 < 국토교통부 장관 >




그린벨트는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도시의 팽창을 막기 위해 영국에서 가장 먼저 도입했다. 산업혁명 이후 인구가 도시로 급속히 몰려들어 런던 시가지는 주요 교통로를 따라 무분별하게 확장되고 도시 슬럼화 문제가 발생했다.

영국은 1930년대 후반부터 도시 팽창을 막기 위한 대책을 검토하기 시작해 1947년 런던대 교수였던 아버크롬비가 내놓은 ‘대런던계획’을 승인하면서 그린벨트의 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1955년 계획 기준을 최초로 수립했다. 이 제도는 일본 오스트리아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등 세계 각국으로 확산됐다. 한국도 산업화가 본격화한 1971년 수도권을 시작으로 6년 만에 8차례에 걸쳐 전국 14개 도시권에 국토 면적의 5.4%에 달하는 5397㎢를 그린벨트로 지정했다.

영국과 한국이 비슷한 제도를 운영했지만 나타난 결과는 다르다. 영국에서는 그린벨트에 거주하는 주민은 대부분 중산층으로 공원, 녹지, 체육시설 등이 풍부한 환경에 만족하고 있다. 영국의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은 그린벨트를 쾌적한 생활환경과 여가공간으로 활용해왔다. 중앙정부는 저소득층의 주거지 확보와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그린벨트를 일부 해제해 활용하기도 한다.

영국 그린벨트 제도를 지탱하는 요인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영국의 도시계획 제도는 우리와 같은 용도지역제가 아닌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의 포지티브 규제 방식인 개발행위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린벨트 지역과 외부의 규제 강도 차이가 우리만큼 크지 않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그린벨트 안과 밖의 토지가격 차이가 거의 없고, 오히려 그린벨트 안의 땅값이 더 높은 지역도 있다.

반면 한국은 강력한 규제로 인해 개발제한구역이라 하면 산과 논·밭만 있는 곳으로 여겨질 정도다. 1971년 지정 당시 95만명이던 개발제한구역 거주 인구는 현재 11만명으로 줄어들었다. 1998년 이후 대도시권을 제외한 춘천권 등 7개 중소 도시권의 그린벨트를 전면 해제하는 등 조정을 거쳤지만 아직도 해당 지자체와 주민들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창출을 위해 추가적인 해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의 과거 정부는 그린벨트를 일부 해제해 임대주택, 보금자리주택 등을 공급하거나 산업단지를 건설하는 등 사업을 벌이는 데 집중했다. 개발제한구역 안에 살고 있는 당사자인 주민의 생활과 관련된 규제 개선은 미흡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주민들이 살고 싶은 개발제한구역으로 만들기 위해 지난 6일 열린 제3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규제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은 생활 불편 해소에 償÷?두고 규제를 완화하되, 나머지 지역은 환경보전 가치에 따라 맞춤형 정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이번 대책 중에서 중소 규모 그린벨트 해제 사업에 대한 권한을 지자체에 위임한 부분이 논란이 됐다. 지자체장이 선거 등을 의식해 선심성 해제를 남발해 난개발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정부가 개발제한구역 관리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번 조치로 지자체가 개발제한구역을 무조건 해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토교통부와 사전 협의를 의무화했다. 해제 가능한 그린벨트 면적도 전체의 6%인 해제 총량 이내로 한정했다. 2년 내 착공하지 못할 경우 개발제한구역으로 환원하게 하는 등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그린벨트 면적의 약 80%를 차지하는 환경평가 1~2등급지는 해제가 불가능하다.

지역에 꼭 필요한 공익사업으로 계획적 개발이 가능한 사업은 해제 절차를 간소화해 신속히 추진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사업은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서 엄격히 심사해 해제를 불허할 계획이다.

무허가 축사 등으로 훼손된 개발제한구역은 녹지로서 기능을 회복할 수 있게 면적의 30%를 공원으로 만들어 공공기여(기부채납)하면 창고시설 설치를 허용하는 훼손지 정비 제도도 도입했다. 훼손된 지역을 방치하기보다는 계획적으로 정비해 공원을 확충하자는 것이다.

개발제한구역 제도는 그동안 녹지 확보와 도시 연담화(連擔化·거대도시 확산) 방지 등 국토 발전에 기여했다. 그렇지만 주민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면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보전할 곳은 철저히 보전하면서 주민 생활 불편을 해소해 살고 싶은 그린벨트로 만드는 쪽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그린벨트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국토부는 개발제한구역 지정 이후 최초로 주민 실태조사를 실시 중이다. 그 결과를 토대로 주민 생활 관련 제도 개선안을 한 번 더 마련할 계획이다.

유일호 < 국토교통부 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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