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보조금 과다 지급으로 공급과잉 초래…'이모작 금지'에 농민 불만
태국정부, 수출 경쟁력 회복·쌀 수요 늘리기 총력
[ 임근호 기자 ]
1년 전 쿠데타로 집권한 프라윳 찬오차 태국 총리의 기조연설은 예정된 30분을 넘어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지난 20일 태국 수도 방콕에서 열린 ‘2015 태국 쌀 컨벤션’에서였다. 프라윳 총리는 “태국 쌀 농가의 빈곤은 심각한 문제”라며 “품질 개선과 수출경쟁력을 회복해 농가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게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태국 인구 약 6700만명의 40%가량을 차지하는 농민을 달래기 위한 발언이었다.
태국 정치·경제가 쌀산업에 발목이 잡혀 있다. 전임 잉락 친나왓 총리의 무책임한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 정책의 후유증이다. 2011년 잉락 전 총리는 시장가보다 높게 농민들로부터 쌀을 사들이면서 정부 재정 낭비와 쌀 공급 과잉을 초래했다. 프라윳 총리는 공급량을 줄이기 위해 이모작 제한이라는 특단의 대책을 내놨지만 농민들은 당장 수입이 줄게 돼 불만이 커지고 있다. 24일 현지 언론인 방콕포스트는 “쿠데타 정권이 들어선 지 1년이 지나면서 국민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하고 있다”며 “경제성장률이 2011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데다 이모작 금지 등 억압적인 정책 탓”이라고 전했다.
○포퓰리즘에 망가진 태국 쌀산업
세계 1위 쌀 수출국의 굳건한 지위를 누리던 태국 쌀산업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2011년 탁신 전 총리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새로운 총리로 당선되면서다. 그해 7월 치러진 선거에서 잉락은 농가 소득 보장과 쌀 보조금 지급을 공약으로 내걸고 약 1570만표를 얻었다. 430만표에 그친 야당을 누른 압도적인 승리였다.
남매의 정치적 기반인 태국 북동부 농민을 위해 2011년 9월~2014년 2월 시행한 보조금 정책은 태국 쌀 산업에 재앙이 됐다.
정부는 시장 가격보다 약 50% 높은 값에 농민들로부터 쌀을 사들였다. 품질이 좋아 오른 수매가를 반영한 가격으로 수출해도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해외 쌀시장에서 태국 쌀 가격은 t당 500달러로 오른 반면 베트남 인도산 쌀은 400달러대를 유지했다. 급격히 시장은 인도 베트남으로 넘어갔다. 2011년 쌀 수출국 1위(1067만t)였던 태국은 2년 만에 인도와 베트남에 자리를 뺏기고 3위(661만t)로 밀려났다.
정부 재정도 망가졌다. 농민이 민간 수출업자보다 값을 더 쳐주는 정부로 몰린 탓이다. 2011년 이후 약 2년 반동안 쌀 보조금으로만 태국 정부는 270억달러(약 29조원)를 썼다. 재정난에 고속철 건설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미뤄졌고,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로부터 신용등급 강등 경고까지 받았다.
○정권 바뀌어도 농민 불만 여전
잘못된 시장 개입의 후유증은 프라윳 정권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비축해놓은 쌀만 1780만t에 이르기 때문이다. 태국 쌀 수출량의 약 2년치에 해당한다. 프라윳 정권은 조금씩 물량을 시장에 내놓고 있지만 벌써 가격 하락의 영향을 받고 있다. 현재 태국 쌀 수출 가격은 380~390달러대로 베트남과 인도 쌀보다 25~40달러 낮게 형성돼 있다. 태국 정부는 올해 1000만t, 내년에 780만t을 시장에 풀어 비축량을 모두 해소할 계획이다.
농민들은 불만이다. 가뜩이나 낮아진 가격에 태국 정부가 이모작 금지로 연간 쌀 생산량을 지난 6년 평균치인 3511만t에서 내년 3373만t까지 줄이려 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 공식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재창출하고 싶어하는 쿠데타 정부 입장에선 커다란 부담이다.
수년간 태국 쌀을 한국에 수입하는 일을 하고 있는 임진수 효림인터내셔널 대표는 “프라윳 정권이 잉락 전 총리를 법정에 세워 책임을 떠넘기려 하지만 농민의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며 “직접적인 보조금 지급은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지원을 늘리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방콕=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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