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 12~13m에 어망 설치
온도 낮춰 냉수성 어종 양식
항균 성능으로 폐사율 줄여
[ 김보라 기자 ]
강원 고성군 봉포항에서 너울대는 파도를 뚫고 5㎞ 외해(外海)로 나가자 지름 32m의 대형 가두리 양식장이 나타났다. 주변에는 조업 중인 배와 부표들이 있었다. 잠수부가 물속으로 들어간 지 10여분 만에 그물망을 들고 배 위로 올라왔다. 그물망을 열자 어른 팔뚝만한 연어가 펄떡이며 튀어나왔다.
연어는 대표적인 냉수성 어종이다. 물 온도가 섭씨 20도 이상 오르면 폐사한다. 여름철 해수면 온도가 섭씨 25도를 넘나드는 아시아 연안에서 연어 양식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이 편견이 깨졌다. 동해STF라는 회사가 아시아 최초로 외해 연어 가두리 양식에 성공하면서다. 양식 성공의 비결은 구리를 사용한 동합금어망에 있었다. 8t 무게의 구리합금망을 수심 12~13m로 끌어내려 수온을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구리의 항균작용으로 물고기 폐사율도 일반 어망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김동주 동해STF 대표는 “10여년간 연구 끝 ?외해에서 연어 가두리 양식에 성공했다”며 “구리를 사용한 동합금어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어 양식에 사용되는 동합금어망은 ‘한국의 구리왕’으로 불리던 고(故) 구자명 전 LS니꼬동제련 회장(사진)의 숙원 사업이었다. 구 전 회장은 2005년 LS니꼬동제련 부회장에 취임한 뒤 국제구리협회(ICA) 이사로 활동하면서 보다 많은 곳에서 구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힘을 쏟았다. 슈퍼 박테리아를 예방하는 ‘동합금어망 도입 및 설치 확대’와 ‘동 항균성 병원 임상시험’이 대표적이다. 2009년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고 회장직에 오른 뒤에도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국내 황동봉 생산 1위 기업 (주)대창, ICA 관계자, 수산업계 관계자들과 전략 회의를 열었다. 그는 “동합금어망이 해양오염을 줄이고 어업 생산성도 높이는 꿈의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결실은 2011년부터 나타났다. 경남 통영 욕지도 참돔 양식장을 시작으로 제주도 일대와 동해안까지 동합금어망 사용이 확장됐다. 일반 나일론어망은 해조류와 수중생물이 달라붙어 6개월에 한 번 ‘망갈이’를 해야 하지만, 구리합금어망은 10년간 물속에 넣어둬도 이물질이 끼지 않았다. 초기 투자 비용은 일반 어망에 비해 4배 이상 비싸지만 항생제 사용을 줄이고 망갈이 비용이 들지 않아 5년 뒤면 더 저렴해진다. 이현우 ICA한국지사장은 “무게 8t 이상의 구리어망은 여름철 태풍에도 끄떡없다는 장점 때문에 최근 양식업자들로부터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LS니꼬동제련 관계자는 “동합금어망을 향한 구 전 회장의 노력이 추운 지방에서만 살 수 있는 연어 양식을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2013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동산업계 최고 권위인 ‘올해의 카퍼맨’(The Copper Man of the Year)상을 받은 구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6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성=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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