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 작동 책임지는 '손과 두뇌' 제작…고품질로 美시장 개척 첫발"

입력 2015-05-29 07:00  

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 산업용 릴 생산업체 코릴 오현규 사장

4년前 중국산 택한 美업체, 품질력 앞세운 코릴과 계약

선박·항공기 등 사용처 다양…거래업체 1만6000여곳 달해

15% 수준인 수출 비중
해외 전시회 출품 확대로 글로벌 기업 만드는데 주력



[ 김낙훈 기자 ] 인천 가좌동에 있는 코릴은 산업용 릴을 생산하는 업체다. 종업원 108명의 중소기업이지만 거래하는 국내기업은 1만6000개가 넘는다. 수출국가도 40여개국을 웃돈다. 비결이 무엇일까.


작년 말 미국의 대형 산업용품 유통업체 관계자가 인천 가좌동에 있는 코릴(대표 오현규·57)을 찾아왔다. 자사 매장에서 코릴 제품을 취급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바이어는 4년 전에도 코릴을 방문했다. 그때는 코릴과 중국 업체를 저울질하다 거래처로 중국 기업을 선택했다. 당시 오현규 사장은 실망하지 않았고, ‘조만간 우리 회사를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불과 4년 만에 코릴을 다시 찾았다. 해당 업체는 연매출 10조원에 이르는 산업용품 유통업체이다. 이 회사가 코릴을 찾은 데는 까닭이 있었다. 산업용 릴은 얼핏 생▤玖?커다란 실패 모양의 틀인 보디(body)에 케이블이나 호스 등을 감아 파는 간단한 제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보면 상당한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제품이다.

릴은 케이블과 호스 등을 감는 보디와 여기에 감긴 제품을 의미한다. 릴을 통해 공기, 가스, 유류, 물, 전원 등을 수십에서 수백m까지 보낸다. 이 중 산업용 릴은 선박, 항공기, 소방차, 고소작업대를 비롯해 많은 곳에서 사용된다.

예컨대 고가사다리차가 사다리를 높게 뻗어 올리려면 릴이 따라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 전력이나 유압을 공급받을 수있다. 중간에 유압이 새거나 릴이 원활하게 펼쳐지지 않으면 고장이 생긴다. 작은 부분품인 릴 때문에 대형 고가사다리차의 작동이 멈추는 것이다.

대형 크레인에 쓰이는 산업용 릴에는 릴뿐 아니라 컨트롤러까지 달려 있다. 이들이 크레인을 움직인다. 이 컨트롤러도 코릴이 만든다. 결국 크레인을 움직이는 두뇌와 손을 제작하는 셈이다. 오 사장은 “릴의 품질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해당 미국업체는 수년간 세부 품질을 검토한 뒤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대신 품질이 좋은 우리 제품으로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가장 큰 시장이어서 이를 개척하게 된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덧붙였다.

릴은 철강제조공정, 선박, 선박부품업체, 항공기 계류장, 특장차 등에도 사용된다. 코릴의 회의실에 항공기, 선박, 고가사다리?등의 모형이 전시돼 있는 것도 이들의 사용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 회사의 표준제품 거래업체는 1만개가 넘는다. 까다로운 기술을 필요로 하는 주문형 제품 거래 업체는 6000개를 웃돈다. 오 사장은 “4년 새 주문형 제품 거래업체가 두 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표준제품은 자동차나 공구 관련 릴 등 표준화된 제품을 뜻한다. 미리 생산해 재고를 두고 팔 수 있다. 주문형 제품(기능성 제품)은 자동화설비, 기계, 건설장비, 소방차, 사다리차, 조선소, 제철소, 해상플랜트 등 특수한 곳에 쓰인다. 미리 주문받아 제작하는 제품이다.

오 사장은 “우리가 1년에 생산하는 릴을 한 줄로 연결할 경우 대략 6만㎞에 이른다”며 “지구 한 바퀴 반에 해당하는 거리”라고 설명했다.

코릴이 산업용 릴의 강자가 된 이유는 뭘까. 첫째, 꼼꼼한 품질 관리다. 오 사장은 “릴과 릴 제어용 컨트롤러가 제기능을 다해야 골리앗 크레인도 제역할을 할 수 있다”며 “케이블 릴과 컨트롤 부품, 유압의 누유(漏油)를 막는 실링 재질은 회사의 명운을 걸고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O링’의 불량 때문에 폭발사고의 비운을 맞았듯, 크레인에서 릴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면 크레인은 무용지물로 변한다. 오 사장은 “품질에 민감한 부품은 가격이 3~4배가 비싸도 좋은 소재로 만든 것을 쓴다”고 말했다.

둘째, 지속적으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부설연구소를 두고 수많은 릴을 연구하고 있다. 호스와 보디, 적절한 탄성의 스프링, 모터제어기술까지 개발한다. 대형 선박 및 항공기 전원공급용 릴도 만들駭? 오 사장은 “그동안 대형 선박은 부두에 접안한 뒤 엔진을 돌려 전원 공급을 했는데 이 경우 연료 소모가 많고 환경오염문제도 있었다”며 “릴을 이용해 전원을 공급해주는 시스템도 개발했다”고 말했다.

항공기가 계류장에 들어오면 자가발전기를 끈 뒤 지상에서 전원을 공급받는다. 이때 항공기에 전원을 공급하는 릴을 코릴이 개발해 국내 공항에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는 특허 7건을 포함, 지식재산권 38건을 획득했고 5건의 특허를 출원 중이다.

셋째, 신속한 납품이다. 이 회사의 사무실과 공장 곳곳에는 ‘납기를 못 지키면, 퇴출’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고객이 요구하는 기간 내에 납품해 바이어의 애를 태우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오 사장은 납기만큼은 직접 챙긴다. 의사결정도 즉각 내린다. 그는 미리 서둘러서 하는 스타일이다.

오 사장은 사업으로 바쁜 시간을 쪼개 꾸준히 공부하는 기업인이다. 남원고를 졸업한 뒤 창피함을 무릎쓰고 후배 고교생과 이리공고 내 공업기술원에서 기계·제도·전기·용접을 배웠다. 그 뒤 광주 경상전문대, 서울디지털대, 인천대 경영대학원(경영학 석사)을 졸업했다.

다양한 기술 개발과 고용창출 등에 기여한 공로로 중소기업청장표창, 지식경제부장관표창, 인천시장상 등을 받았다. 작년 7월 관세청으로부터 세계관세기구의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종합인증우수업체(AEO)’ 인증도 받았다. 수출입시 신속하게 통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이 회사의 작년 매출은 213억원으로 4년 새 50%가량 늘었다.

오 사장은 “모든 게 직원들이 열심히 기술개발하고, 영업하고 생산해준 덕분”이라며 “앞으로는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수출국은 유럽, 미주, 동남아, 오세아니아 등 40여개국에 이른다. 하지만 다품종 소량 생산 수출이다 보니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5%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인천수출경영자협의회장을 지낸 오 사장은 “해외 전시회에 자주 출품하고, 시장개척단 참가 횟수를 늘려 코릴을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2013년 사명을 ‘3국산업’에서 ‘코릴(KOREEL)’로 바꾼 것도 이런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릴업체로 도약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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