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편성권·법원 양형기준까지…"의원입법 30%가 정부권한 침해"

입력 2015-05-29 21:07  

도 넘은 '국회 폭주' (1) 삼권분립 무너뜨린 입법부

'눈먼 돈' 국고보조금 늘려라
공공주택건설법·장애인연금 등 지역구 예산 못 박은 법안 남발

시행령 넘어선 '월권 법안'
식품위생법·평생교육법 등에 지원기구·전담조직 설립도 규정



[ 조진형/김주완 기자 ]
국회는 헌법에서 보장한 정부의 예산 편성권마저 위협하고 있다. 국회는 예산을 심의·확정하는 권한을 넘어 특정 예산을 늘리라는 요구를 남발하고 있다. 시행령으로 정부 지원금이 이미 정해진 특정 사업에 예외적으로 지원을 늘려달라는 내용을 법률에 못 박는 식이다. 국가 재정 건전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역구 예산을 한푼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9일 “지역구 이권을 챙기려거나 의원입법 발의 건수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정부 시행령을 편의적으로 바꿔서 발의하는 법안이 지나치게 많아졌다”며 “전체 의원입법 발의 건수의 30% 정도는 정부 권한을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눈먼 돈’ 노린 입법 수두룩

정부 시행령 내용을 법률로 못 박으려는 의원입법은 대부분 예산과 관련돼 있다. 함진규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한 달 전 ‘공공주택건설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공공주택지구를 해제할 때 지정하는 특별관리지역에 대한 국고보조율을 최소 50%에서 최대 80%까지 늘리는 내용을 담았다.

특정 사업에 대한 국가 예산과 지방 예산의 지원 비율인 국고보조율은 보조금관리법 시행령에 정해놓고 있지만 국회의원이 입법권을 활용해 재정 지원 확대를 시도한 것이다. 함 의원의 지역구인 시흥시는 공공주택지구에서 처음으로 해제된 곳이다.

특정 사업에 대해 국고보조율을 변경해 국가 예산을 늘려달라는 내용의 법안은 쌓여 있다.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11월 영유아보육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등은 지방 예산을 들이지 않고 전액 국고보조금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보조금 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앞서 같은 당의 최동익 의원을 비롯해 오제세·박병석 의원도 각각 특정 사업에 대해 국고 지원을 높이는 내용을 담은 ‘보조금 관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시행령에서 정한 국고 지원을 늘려달라는 법안은 지역구를 기반으로 하는 의원들의 포퓰리즘 입법”이라며 “눈먼 돈이라는 인식이 강한 국고보조금을 더 받아내기 위한 법안을 집중적으로 발의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예산 탐내는 입법 막기 벅차”

시행령에 담아야 할 사안을 법률로 강제하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원기구나 전담조직 등에 淪?예산 지원 등을 법률로 규정하는 식이다. 지난달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은 나트륨 섭취 줄이기 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운동본부 설립과 예산 지원을 포함시켰다.

송호창 새정치연합 의원도 지난달 국민 문맹 해소를 위한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평생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지역문해교육지원센터 설립과 정부 지원을 못 박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원 조직 설립 등에 대한 사안은 시행령에서 정할 일이지만 의원들이 관련 예산을 확실히 받아내기 위해 법률에 포함시키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예산 편성권과 같은 정부의 핵심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큰 법안은 대부분 국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럼에도 이 같은 입법권이 남발되는 이유는 국회의원이 의원입법 발의 건수 실적을 쉽게 올릴 수 있는 데다 지역구 이권을 열심히 챙기고 있다는 점을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19대 국회에서 접수된 법안은 이날 현재 1만3712건으로 이미 18대 국회 실적(1만2220건)을 넘어섰다.

기재부의 한 과장은 “정부 권한을 침해하는 법안을 막기 위해 동원되는 행정력도 만만치 않다”며 “국회에선 법안을 발의해놓고 특정 사업 예산을 늘려달라는 식의 거래를 제안하기도 한다”고 했다.

조진형/김주완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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