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본질 왜곡하고 삼권분립 훼손
'뛰는 일본 기는 한국' 가른 건 국회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객원논설위원 >
‘끼워팔기’는 한 시장에서 독점력을 가진 기업이 그것을 이용해 다른 시장도 지배하려 할 때 행해진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미국 독점당국의 제재를 받은 것은 시장 점유율이 높아서가 아니라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검색브라우저(익스플로러)를 윈도에 부당하게 끼워팔아 경쟁사인 넷스케이프사를 도태시켰기 때문이다.
부당한 끼워팔기는 정치 세계에서도 목도된다. 이른바 사회적 합의를 방패막이로 한 ‘의안 끼워넣기’다. 여야가 지난 29일 새벽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끼워넣은,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 권한을 명문화한 국회법 개정안이 그 전형이다. 이번에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은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하면 행정기관은 이를 지체 없이 처리해야 한다’로 돼 있다. 이 정도면 무소불위 슈퍼갑(甲)으로서의 의회가 아닐 수 없다. 모든 권력의 타락은 스스로를 전지(全知)한 존재로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 법 체계는 이미 이 부분에서 균형을 취하고 있다. 국회는 국회법(98조)에 따라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이 상위 법률의 취지와 맞지 않으면 해당 행정기관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하고 처리 계획을 보고 받을 수 있다. 헌법(제107조)은 대법원으로 하여금 재판을 통해 행정입법의 상위법 위반 여부를 판단케 하고 있다. 결국 국회법 개정안은 헌법에 명시된 정부의 행정입법권과 사법부의 심판권을 부정한 것이다.
이번의 끼워넣기는 공분(公憤)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논의하면서 이해 집단의 반발이 거세지자 물타기를 시도했다. 공적 연금 강화란 명분으로 국민연금, 기초연금을 끼워넣으려 했다. 비판적 여론이 일자 법인세 인상,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해임안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세월호 문제를 끌어들인 것이다. 공정한 조사를 위해 세월호 특별조사위 조사 1과장을 민간인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담보하기 위해 ‘국회가 시행령을 바꿀 수 있다’는 무리수를 둔 것이다.
정파적 이익을 좇아 성격이 다른 사안을 무리하게 연계시키면 논의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공무원연금 개혁은 개혁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용두사미가 돼 버렸다. 연금의 근본 틀을 바꾸는 개혁이 아닌, 기여율과 지급률을 일부 수정하는 ‘모수 변경’에 그쳐서다. 기대수명 연장, 공무원 수 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추가 연금 개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지난 29일 새벽 공무원연금 개혁안 등 67개 안건을 통과시킬 때 ‘경제활성화 법안’들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벤처자금 조달을 쉽게 하는 크라우드펀딩법, 서비스산업에 재정·금융 지원을 제공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유해시설이 없는 경우 호텔 설립을 쉽게 하는 관광진흥법, 원격진료를 확대하는 의료법, 외국인 환자 유치 촉진을 위한 국제의료사업지원법 등 개정안은 뒷전으로 밀렸다. 그들 눈에는 ‘조사 1과장’이 더 중요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 20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5%에서 3.0%로 0.5%포인트 낮췄다. 한국은행도 지난 9일 종전 3.4%에서 3.1%로 끌어내렸다. 반면 일본은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0.6% 증가했다고 지난 20일 발표했다. 시장 추정치인 0.4%를 웃돈 수치다. ‘뛰는 일본과 기는 한국’을 가른 것은 정치권의 생산성이다. 아베 신조 내각과 의회가 구조개혁과 규제철폐 법안을 신속히 처리하면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때 우리는 기 싸움에 함몰됐다.
국회는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포퓰리즘과 정파적 이익을 좇는 데 혈안이 된 국회, 헌법에 반하는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자신들을 ‘비토그룹’으로 만듦으로써 개인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 한 국회가 아닌지를 말이다. 이 정도의 정치 생산성에 국회의원 1인당 아홉 명의 보좌진은 사치가 아닌가.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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